이란 난민으로 한국에 거주하게 된 김민혁 군의 이야기

2010년, 7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낯선 땅 한국에 발을 디딘 이란 소년 김민혁. 그는 단순한 이방인이 아닌, 편견과 절망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희망을 쏘아 올린 작은 영웅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난민의 고난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연대의 가치를 일깨우는 감동적인 실화로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사업을 위해 한국에 온 김민혁 군과 그의 아버지 A씨는 우연한 기회로 천주교를 접하게 된다. 이슬람 율법이 엄격한 이란에서 개종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이들은 새로운 믿음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믿음은 곧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란에 있는 가족들은 개종 사실에 분노하며 연락을 끊었고, 고국으로 돌아갈 경우 배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김민혁 군과 아버지는 2016년 한국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버지 A씨는 “신앙이 확고하지 않다”는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고,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김민혁 군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리고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난민 인정을 호소했다.

김민혁 군의 간절함은 친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주중학교 친구들은 ‘민혁이가 난민으로 인정받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고,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김민혁 군을 지지했다. 이들의 따뜻한 연대는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고,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2018년, 김민혁 군은 난민으로 인정받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아버지 A씨는 여전히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인도적 체류 허가’만 받은 상태였다. ‘신앙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난민 신청이 거부된 아버지와, 아들이 성인이 되면 함께 이란으로 추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이들을 끊임없이 짓눌렀다. 하지만 김민혁 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난민 인정을 위해 다시 한번 세상에 호소했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속에 법원은 2021년, 아버지 A씨의 난민 인정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5년간의 긴 싸움 끝에 김민혁 군과 그의 아버지는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김민혁 군은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 얼굴도 모르는 분들께 모두 감사하다”며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만큼 앞으로 베풀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모델, 배우, 음향감독 등 다양한 꿈을 꾸며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있으며,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여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포부를 밝혔다.
김민혁 군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난민에 대한 편견을 넘어, 인간적인 공감과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그는 “난민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이웃”이라며, “편견이 애정 어린 관심으로 바뀔 수 있도록 계속 부딪히겠다”고 말했다. 그의 용기와 희망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큰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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