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열도를 뒤흔든 한국 여가수가 있다. 모델 못지않은 세련된 외모와 고혹적인 무대 매너, 그리고 무엇보다 호소력 짙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일본 전역을 휩쓴 그녀는 단숨에 슈퍼스타 반열에 올랐다.
1980년대 한국에서 아역 출신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던 그녀는 광고모델로 전업했다가 다시 가수로 돌아왔다. 초창기에는 높고 째지는 음색에 허스키함이 더해진 독특한 보컬로 주목받으며, 1980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여자 신인상, 1982년 KBS 가요대상 본상 후보에 오르는 등 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던 중 일본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浜圭介)를 만나며 전환점을 맞는다. 1985년 「오사카 황혼(大阪暮色)」으로 일본 데뷔에 성공한 그녀는 엔카 무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일본 가요계 정상에 섰다. 절제된 감정 표현과 관능적인 분위기, 그리고 독보적인 음색 덕분에 일본 음악 차트를 휩쓸었고, 조용필보다도 더 큰 인기를 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일본에서의 위상은 남달랐다.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식사 자리에 동석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팬클럽 회장을 맡았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실제로는 회장까지는 아니었지만, 열혈 팬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일본 전역에서 쏟아진 귀화 요청에도 그녀는 끝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고수하며 한국인으로 남았다.

그녀는 일본 최고의 무대인 NHK 홍백가합전에 무려 7회 연속 출연해 한국 가수 중 최다 기록을 세우며, 지금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레전드 미녀 가수’로 불리고 있다. 일본 열도를 사로잡았지만 끝내 한국인의 자부심을 지켜낸 그 주인공은 바로 계은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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