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한국의 K9인가?

베트남이 한국산 K9 자주포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국제 안보 지형에 의미심장한 균열이 생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베트남 정부 간 체결된 이번 계약은 단순한 무기 수출이 아니라, 베트남의 전략적 선택과 맞닿아 있다. “왜 하필 한국의 K9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베트남의 역사, 군사적 필요, 그리고 지정학적 딜레마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 군 현대화는 오랫동안 러시아 무기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생산 여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공급 지연과 부품 부족 문제가 본격화되었다. 이미 수십 년 된 2S1, 2S3 자주포가 여전히 베트남 군 주력으로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후화된 장비는 현대전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확인한 베트남은 더 이상 러시아 무기에 기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중국 견제, 그러나 노골적인 ‘반중’은 피한다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국경 분쟁으로 중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최대 교역국이자 정치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이 미묘한 관계 속에서 베트남은 미국산 무기처럼 노골적으로 ‘서방 편향’을 드러내기 어려웠다. 한국은 그 공백을 메울 최적의 파트너였다. 한국 무기는 나토 표준 155㎜를 채택해 서방과 호환되면서도, 중국이 즉각 ‘반중 선언’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중간 지대를 제공한다.
K9 자주포는 이미 10개국 이상이 도입해 사용 중인 글로벌 스탠더드다. 사거리 40km, 분당 6~8발의 고속 사격, 15초 안에 3발을 퍼붓고 곧바로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신속 진지 변환’ 능력은 러시아제 자주포보다 두세 세대 앞선 기술이다. 가격 또한 독일제 PzH2000보다 절반가량 저렴하면서 성능은 대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빠르게, 많이, 정확하게 쏠 수 있는” 포병 전력은 중국의 압도적 병력 규모를 억제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한국과 전략적 신뢰, ‘대나무 외교’ 속 조용한 전환

K9 계약은 단순한 장비 판매가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의 국방 협력 심화라는 의미도 크다. 베트남은 K9 운용뿐 아니라 기술 이전과 현지 조립 가능성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K10 탄약보급차, 유지·보수 체계까지 포함한 ‘패키지형 협력’은 베트남 군 현대화와 맞닿아 있다. 한국 역시 공산권 국가에 첫 무기 수출이라는 상징적 성과를 얻게 된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대나무 외교’를 표방해왔다. 겉으로는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전략이다. 이번 K9 계약 역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비공식적으로 ‘로키(low-key)’로 추진됐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방 무기 체계와 호환되는 첫 대규모 거래라는 점에서 베트남 군 현대화의 방향 전환을 보여준다.
베트남의 선택은 단순히 “좋은 무기”를 골랐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끊고,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며,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전략적 행보다. 그리고 그 복잡한 계산 끝에 나온 해답이 바로 한국산 K9 자주포다. 베트남이 이 무기를 어떻게 운용하고 추가 계약을 이어갈지에 따라, 동남아 안보 지형도 적잖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