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산골소녀 영자의 방영후 국민적 관심과 이후 다가온 비극

KBS 1TV ‘인간극장’을 통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던 ‘산골소녀 영자’가 방송 이후 겪은 충격적인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상업주의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로 남았다.
강원도 삼척의 깊은 산골 사무곡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영자 양은 1997년 사진작가 이지누 씨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2000년 ‘인간극장-그 산골엔 영자가 산다’는 제목으로 5부작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다.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후원금이 쇄도했고, 영자 양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서울에 상경해 초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또한 LG텔레콤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며 새로운 삶을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듯 보였던 영자 양의 삶은 곧 끔찍한 비극으로 얼룩졌다.

2001년 2월 12일, 산골집에 홀로 남겨졌던 영자 양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지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처리될 뻔했으나, 영자 양이 아버지 시신에서 흉기에 찔린 깊은 상처를 발견하면서 경찰은 살인 사건으로 수사를 재개했다. 결국 전과 8범의 강도 살인범 양모 씨가 범인으로 검거되었다. 양 씨는 영자 부녀의 방송과 광고를 보고 돈이 많을 것이라 오판하여 범행을 저질렀으나, 실제 훔친 돈은 단돈 12만 4천 원에 불과했다. 이 사건은 당시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과 함께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슬픔에 잠겨 있던 영자 양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그녀의 후원회장이었던 김모 씨가 광고 출연료와 후원금 등 약 700만 원을 가로채고, 영자 양을 정신적·육체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드러나 2001년 2월 27일 구속되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영자 양은 믿었던 사람에게마저 배신당하며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은 영자 양은 “세상이 너무 무섭다”는 말을 남기고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 ‘도혜’라는 법명을 받고 비구니가 되었다. 언론은 그녀의 근황을 쫓았고, 결국 암자로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작가 이지누 씨는 영자 씨를 세상에 알린 것을 후회하며, “사람들이 영자 씨를 소비한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영자 양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유고 시집 출판을 명목으로 한 출판사의 거짓말과 돈벌이 시도는 죽은 아버지마저 상품화하려 했던 상업주의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산골소녀 영자 사건’은 방송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조명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상업주의와 무책임한 관심이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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