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을 뒤집은 단 한 번의 작전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이 산업처럼 번성하던 시기, 한국 선박은 이미 표적이 된 상태였다. 몸값을 지불하면 풀려난다는 선례가 반복되며 해적들에게 한국은 돈이 되는 국가로 인식됐다. 그 인식을 정면으로 깨뜨린 사건이 바로 아덴만 여명 작전이다.
소말리아 해적은 단순 범죄자가 아니었다. 무정부 상태를 틈타 자본과 조직을 갖춘 산업으로 진화했다. 납치와 협상은 수익 모델이었고, 외국 선박은 투자 대상에 가까웠다.

2010년 삼호 드림호가 납치돼 7개월간 억류된 끝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며 풀려난 사건은 결정적이었다. 선원은 구했지만 해적에게는 확신을 남겼다. 한국 배는 끝까지 돈을 낸다는 메시지였다.
이후 같은 회사의 삼호 주얼리호가 다시 피랍됐다. 이번에는 정부의 판단이 달랐다. 협상은 없다는 원칙 아래 군사 작전이 결정됐다.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작전의 핵심은 시간이었다. 석해균 선장은 해적의 감시 속에서도 배의 속도를 늦추고 엔진을 고의로 손상시켜 시간을 벌었다. 이 지연이 작전 성공의 전제가 됐다.

2011년 1월 21일 새벽, 최영함과 링스 헬기의 지원 아래 UDT 대원들이 선박에 침투했다. 50여 개의 선실을 하나씩 확보하며 해적을 제압했다. 해적 8명이 사살되고 5명이 생포됐다.
우리 측 인명 피해는 없었다. 선원 21명 전원이 구출됐다. 작전은 짧고 정확하게 끝났다. 해적 산업의 계산식을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총상을 입은 석 선장은 긴급 수술이 필요했다. 이국종 교수가 사비를 들여 수송기를 빌려 생명을 살린 일화는 이후까지 논란을 남겼다. 개인의 헌신에 기대야 했던 국가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러나 작전의 전략적 효과는 분명했다. 이후 해적들은 한국 선박을 우선 표적에서 제외했다. 건드리면 끝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아덴만 여명 작전은 인질 구출을 넘어 메시지였다. 돈이 아니라 힘과 의지로 대응한다는 선언이었다. 이 한 번의 선택이 한국의 해상 위상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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