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속 낡은 사진 두 장, 70년 세월을 버틴 힘

70년의 세월을 넘어선 미군 참전 용사의 영화 같은 순애보가 마침내 평온한 결실을 보았다. 미국 아이오와주 출신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 드웨인 맨 씨가 1954년 헤어진 첫사랑 일본인 연인 페기 야마구치 씨와 재회하며 평생의 한을 풀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54년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 시작됐다. 당시 22세였던 드웨인은 기지 내 장교 클럽에서 모자 보관소 직원으로 일하던 페기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뛰어난 춤 실력과 지적인 매력을 가진 페기에게 매료된 그는 매일 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깊은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 사이에는 새 생명도 찾아왔다.

그러나 1954년 종전 후 군 인원 감축으로 드웨인이 갑작스럽게 본국 귀국 명령을 받으며 이별이 찾아왔다. 그는 미국에 가서 저축해둔 돈을 찾아 페기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고향 아이오와에서 마주한 현실은 가혹했다. 아버지는 드웨인의 저축을 모두 써버렸고, 일본인 여성과의 결혼을 반대했던 어머니는 페기가 보낸 편지들을 중간에서 가로채 모두 태워버렸다.
연락이 끊긴 절망적인 상황에서 드웨인의 누이가 몰래 건네준 마지막 편지에는 페기가 아이를 유산했다는 소식과 함께 다른 이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슬픈 내용이 담겨 있었다. 드웨인은 평생 그녀를 버렸다는 죄책감 속에 살았다. 그는 두 번의 결혼과 여섯 자녀를 둔 삶 속에서도 지갑 속에 페기의 사진 두 장을 70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왔다.

기적은 드웨인이 91세가 된 2022년 5월,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연을 아들 브라이언의 도움으로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 간절한 소식은 KETV 뉴스를 통해 전파를 탔고, 사연을 접한 캐나다의 한 역사학 연구자가 1956년 신문 기사에서 페기의 흔적을 찾아냈다. 놀랍게도 페기는 일본이 아닌, 드웨인의 집에서 약 1,000km 떨어진 미시간주 에스카나바에 살고 있었다.

마침내 성사된 2022년 6월의 재회에서 드웨인은 70년 만에 “결코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는 진심을 전했다. 페기 역시 “춤추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물으며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특히 페기가 자신의 장남 중간 이름을 그의 이름인 ‘드웨인’으로 지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두 사람의 사랑이 서로의 기억 속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었는지 확인시켜 주었다.
70년 전의 오해를 풀고 생의 마지막 숙원을 이룬 드웨인 맨 씨는 2023년 11월 15일, 아이오와주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평생의 마음 짐이었던 죄책감을 내려놓고 첫사랑의 미소를 확인한 지 약 1년 5개월 만의 평온한 영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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