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공작원으로 길러진 소년, 김동식의 전향

북한 사회에서 엘리트로 분류되는 남파공작원의 세계는 우연처럼 시작됐다. 김동식 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노동당 간부들의 눈에 띄어 길거리에서 선발됐다. 외모와 체격, 출신 성분, 가족 배경까지 철저히 검증한 뒤 수백 명 중 극소수만 살아남아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으로 향했다.
훈련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방식이었다. 매일 20kg 모래 배낭을 메고 10km 넘게 달렸고, 한 달 만에 8km를 수영하도록 강요받았다. 훈련은 대부분 야간에 진행됐고, 탈락은 곧 인생의 소거를 의미했다.

전투 기술은 더욱 집요했다. 격술이라 불리는 종합 무술을 하루 8시간씩 반복했고, 연필과 볼펜 같은 일상 물건까지 무기로 쓰는 법을 익혔다. 맨손으로 벽돌 열 장을 격파할 정도로 신체를 단련하는 과정도 포함됐다.
훈련의 핵심은 남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서울말과 경상도말을 외국어처럼 배우며 말투를 바꿨고, 남한 뉴스와 드라마, 조용필과 이용의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 사고방식과 감정까지 현지화하는 적구화 교육이었다.
실습은 실제 남한을 복제한 공간에서 이뤄졌다. 평양 인근 터널 안에는 남한의 슈퍼와 다방, 여관이 그대로 재현돼 있었고, 실제 남한 화폐를 사용했다. 강사 상당수는 납북되거나 월북한 남한 출신 인물들이었다.

1995년, 그의 운명을 바꾼 임무가 내려왔다. 15년간 남한에서 승려로 위장 활동하던 고정간첩 ‘봉화 1호’를 북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이었다. 이 작전은 성공하면 영웅, 실패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임무였다.
그러나 실체는 달랐다. 봉화 1호는 이미 15년 전 검거돼 전향한 상태였고, 남한 정보당국은 이를 이용해 허위 교신으로 북한을 유인하고 있었다. 김동식 씨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남파됐다.
부여 정각사 인근에서 상황은 급변했다. 잠복 중이던 경찰과 안기부 요원들과 총격전이 벌어졌고, 그는 종아리에 총상을 입은 채 체포됐다. 함께 투입된 동료는 현장에서 사살됐다.

체포 이후에도 그는 2년간 전향을 거부했다. 그러나 뒤늦게 붙잡힌 다른 공작원을 통해 가족이 북한에서 숙청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숨을 걸고 충성했지만 가족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결정을 바꿨다.
그는 결국 전향을 택했다. 이후 국방 관련 기관에서 분석관으로 활동하며 북한 공작 체계와 인물 분석에 참여했다. 과거 동료들의 정체를 밝히는 데도 힘을 보탰다.
김동식의 증언은 한 개인의 전향담을 넘어선다. 체제가 만들어낸 충성과 희생의 구조가 어떻게 개인을 소모하는지를 드러낸다. 남파공작원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삶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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