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금강산을 뒤흔든 효심, 이군익씨의 이야기

2006년, 92세의 연로하신 아버지를 직접 제작한 지게에 태워 금강산 관광에 나선 이군익 씨의 이야기는 온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당시 육로 관광이 막 시작되었던 금강산에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특수 제작한 지게에 태워 산을 오르는 이 씨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금강산 입경 당시, 북한 검색대의 까다로운 검사를 받던 이 씨는 자신이 92세 아버지를 지게에 태우고 금강산에 오르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연을 들은 북한 감시원은 날카롭던 경계의 눈빛을 풀고 “아버님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며, “이쪽으로 그냥 통과하십시오”라고 말하며 이 씨 부자의 효심에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고 한다. 이는 당시 남북 관계의 경색 속에서도 인간적인 동질감과 효의 보편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

금강산 효행 이후, 이군익 씨의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이 이야기는 중국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2006년 10월, 중국 산둥성 지역 방송인 제노TV는 이 씨의 효행을 취재했으며, 산둥성 지역 언론들은 ‘효가 사라진 중국에 경종을 울렸다’며 그의 사연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중국의 유학자 교육기관 관계자들과 시인들은 이 씨를 직접 만나기 위해 숙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시인은 “공자의 옛 고향을 찾은 이 선생의 효행이 세상 사람을 감동시켰다”는 내용의 시를 보내기도 했다.
이군익 씨는 금강산 등반 이후 아버지의 기력이 좋아지자, 아버지와 함께 중국 태산에도 오르며 효행을 이어갔다. 산행 후 중국 현지 언론들은 이 씨의 효행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한 중국 등산객은 “오늘 무척 감동했다. 저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군익 씨는 2006년 금강산과 중국 태산 등반 이후에도 꾸준히 효를 실천하며 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2010년에는 모교인 인천대학교에 발전기금을 기부하며 효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2017년에는 아버지와 금강산에 올랐던 효행의 상징인 ‘지게 의자’를 대전효문화진흥원에 기증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현재도 효 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이군익 씨는 효학박사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효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아버지 이선주 옹은 2012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군익 씨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당신의 효행으로 인해 아버지께 금강산과 태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 드릴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2006년, 92세의 아버지 이선주 옹을 지게에 태우고 금강산에 올라 전국민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던 이군익 씨. 그의 숭고한 효심은 2025년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으며, 이는 세대를 넘어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계속 회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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