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이해경 여사

이해경 여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을 잇는 인물로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해왔다. 의친왕 이강의 다섯째 딸이자 고종 황제의 손녀인 그녀의 삶은 대한제국의 흥망성쇠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1930년 서울 사동궁에서 태어난 이해경 여사는 세 살 때 생모 김금덕과 떨어져 의친왕비 김씨(법모) 슬하에서 자랐다. 이러한 환경은 그녀에게 궁중 생활의 엄격함과 동시에 따뜻한 애정을 경험하게 했다. 넉넉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그녀는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음악과를 졸업하고 풍문여자고등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주한 미8군사령부 도서관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 경험은 훗날 그녀가 사서로서 활동하는 계기가 된다.
1956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 황실이 몰락하는 와중에 이해경 여사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텍사스 메리하딘베일러 여자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며 석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69년부터 컬럼비아 대학교 동양학 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근무하며, 이해경 여사는 27년간 미국에 흩어진 한국 문화유산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데 헌신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아버지 의친왕의 항일 독립운동 기록을 발견하며 부친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나의 아버지 의친왕’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도 이해경 여사는 한인 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에 힘쓰는 한편, 뉴욕한국문화원 강연 등을 통해 대한제국 황실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힘썼다. 또한, 일본 도쿄 국립 박물관에 소장된 고종 황제의 투구와 갑옷 반환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문화유산 반환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22년에는 의친왕기념사업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어, 황실의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기여하고 있다.
이해경 여사는 스스로를 ‘마지막 공주’나 ‘마지막 옹주’로 불리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하며, 진정한 존칭은 ‘선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그녀가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으로서 겪었던 역사적 고찰과 함께, 현재의 민주공화국 시대에 맞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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