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아파트, 90년의 질긴 생존기

서울 2호선 충정로역을 나오면 마주하는 초록색 건물이 있다. 이름은 충정아파트. 올해로 꼬박 90살이 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태어났다. 이미 1979년 박정희 정권 때 ‘정비사업 구역’으로 묶였지만, 2025년 현재까지도 굳건히 서 있다. 왜일까? 이유는 기묘하고도 아이러니하다.
한국 아파트의 원조

충정아파트는 흔히 국내 최초의 ‘아파트’로 꼽힌다. 1930년대 일본인 도요타가 지은 건물로, 내부 중정(中庭)과 중앙난방용 벽돌 굴뚝, 세대 내 수세식 화장실까지 갖췄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설이었다. 한국전쟁 전후로는 호텔과 미군 숙소, 심지어 인민군 점거지까지 거쳤다. 그야말로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버텨낸 건물이다.
사라진 아들들 그리고 사기꾼

건물이 본격적으로 ‘운명’을 바꾸게 된 건 6·25 전쟁 직후다. 제주 출신 김병조라는 인물이 ‘여섯 아들을 전쟁에 바쳤다’는 사연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반공의 아버지’라 불렸고, 이승만·박정희 정권에서 훈장과 건물 관리권까지 받았다. 당시 가치로 5억 환, 현재 돈으로 약 20억 원 규모의 건물이었다.
김병조는 건물을 호텔로 개조했지만 곧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던 것이다. ‘국가를 감동시킨 비극의 아버지’는 사실상 거짓말쟁이였다. 결국 군사정권에 의해 사기꾼으로 몰려 구속됐고, 건물은 국가에 몰수됐다.

불법 5층이 남긴 덫
이후 건물은 공매를 거쳐 일반 분양되며 ‘유림아파트’라는 이름을 달았다. 그러나 김병조가 호텔로 개조할 때 지은 불법 증축 5층이 문제였다. 이 층에는 대지 지분이 없었다.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땅 지분’을 바탕으로 진행되는데, 5층 주민은 법적으로 게임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79년, 충정로 도로 확장 공사가 이 아파트를 정면으로 밀어붙였다. 보상과 재건축으로 풀 기회였지만, 5층 문제로 합의가 무산됐다. 결국 건물 전면부 일부를 잘라내는 기형적 선택을 했고, 지금의 ‘시칼로 자른 케이크 단면’ 같은 외관이 만들어졌다. 그 후 주민들은 복도와 중정까지 잠식하며 살림을 꾸려나갔다.

40년 넘게 표류한 재건축
1979년이 바로 강남 음마아파트가 들어선 해다. 충정아파트가 그 시기에 재건축을 놓치면서, 이후 40년 넘게 정비사업은 표류했다. 한때는 ‘문화유산 보존 논란’까지 겹쳐 철거조차 불투명했다.
결국 2022년에야 서울시가 철거 쪽으로 방침을 정했고, 2024년에는 재개발 조합이 설립됐다. 그러나 아직 5층 지분 정리가 완전히 해결됐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시공사 선정도 지연되고, 건설 경기 침체까지 겹쳐 순탄치 않은 길이 예고된다.

미룰 수 없지만 개발 진전 없어
문제는 시간이 없다. 2024년 안전진단에서 충정아파트는 최하 등급인 E등급, 즉 ‘즉시 철거 대상’ 판정을 받았다. 서대문구는 임시 거처와 임대주택 지원 계획까지 내놓은 상태다. “이번에는 반드시 철거가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의 핵심은 사업성 부족이다. 충정아파트와 인근 저층 주택가를 합쳐 지하 6층~지상 28층, 192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으로 재개발하는 계획이 잡혀 있지만,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 시공사 선정 입찰이 모두 유찰됐다. 조건을 완화했음에도 단 한 곳의 건설사도 참여하지 않았다.
건설사들이 등을 돌린 이유는 분명하다. 사업 규모가 작아 수익성이 낮고,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으로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도산 위기에 몰려 있으며, 100년 가까운 건물 특성상 지하 구조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구청에서 하수도를 찾으려 1년 동안 땅을 팠지만 끝내 못 찾은 사례도 있다”며 “만약 지하에서 예상치 못한 시설이나 문화재가 나오면 공사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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