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힘들었던 십대 시절 이야기

이재명 대통령의 어린 시절은 극심한 가난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리고 두 차례의 극단적 선택 시도로 점철된 참혹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굳은 의지로 절망을 딛고 일어나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오늘날의 자리에 섰다.
1963년 경상북도 안동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이재명 대통령은 7남매 중 다섯째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가세가 기울어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도박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국민학교 졸업 후 곧바로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하여 중학교 대신 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며 고된 노동을 견뎌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공장 기계에 팔이 끼어 장애를 얻었고, 독한 약품을 다루며 후각을 잃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가득했다. 가난 때문에 자신을 공부시키지 못하고 생계 전선으로 내몬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은 그를 깊은 우울감으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10대 시절 두 차례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1980년 초여름, 17세의 나이에 그는 수면제 수십 알을 삼키고 연탄불을 피워놓고 다락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고, 그때 매형이 찾아와 그를 구해냈다.

이 사건을 되돌아보며 이재명 대통령은 당시 약사가 수면제 대신 소화제 수십 알을 건네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는 당시 약사의 행동이 자신을 살린 것이라고 회고하며, “약사는 처음 보는 나를, 세상 슬픔을 다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생을 끝장내려고 하는 소년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험은 후에 그가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서로를 향한 사소해 보이는 관심과 연대”라고 말하며 자살 예방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장에서의 참혹한 경험과 굴곡진 삶 속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은 공부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통해 중졸, 고졸 학력을 취득하고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며, 이후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변호사 시절에는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 등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회 변화를 이끌고자 노력했다.
이후 그는 정치에 입문하여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거쳐 마침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삶은 가난과 역경을 딛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개천에서 용 난’ 이야기의 표본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은 현재 그의 정책 기조와 국정 운영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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