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루프 –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이었던 최덕신, 류미영 부부가 월북한 사연

최덕신(1914~1989)은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을 지낸 고위 관료 출신으로, 그의 삶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박정희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부인 류미영과 함께 북한으로 망명한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그의 월북은 단순한 변절을 넘어, 이념과 개인사, 정치적 격랑이 뒤섞인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최덕신은 1914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독립운동가 최동오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중국으로 건너가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광복군에서 활동하며 항일운동에 헌신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한국군 장교로 복무, 6.25 전쟁에 참전하여 8사단장과 11사단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거창 양민 학살사건에 연루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외무부 장관, 서독 대사 등 요직을 거쳤으나, 동백림 사건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이후 박정희 정권과 갈등을 겪으며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다.
1976년 미국으로 이민, 이후 과거 행적과 전혀 다른 친북 활동을 벌이다 1986년 부인 류미영과 함께 북한으로 망명했다. 북한에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등을 지내며 고위직을 역임했다.

그의 아내 류미영(1921~2016)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인물이었던 류동열의 수양딸로, 남편 최덕신과 함께 월북하여 북한에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지냈다. 그녀는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측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 남한에 있던 아들 최인국과 재회하기도 했다.
최덕신 부부의 월북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박정희 정권과의 갈등으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월북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있었으며, 김일성이 과거 최덕신의 아버지에게 가졌던 인연을 강조하며 회유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여기에 6.25 전쟁 때 납북된 부친의 묘소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방북했다가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받아 월북을 결심했다는 이유도 존재한다.
최덕신 부부의 월북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차남 최인국은 ‘월북자’의 자식이라는 굴레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았다. 결국 그도 2019년 부모의 뒤를 따라 자진 월북하여 파란만장한 가족사에 또 다른 장을 추가했다.

최덕신 부부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남한에서는 변절자, 북한에서는 ‘조국통일’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들의 삶은 이념 대립과 냉전의 잔재 속에서 개인의 선택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그리고 역사가 개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최덕신 부부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분단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여전히 논쟁적이며,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통해 이념, 가족,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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