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루프 – 화려한 결혼,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신부, 그러나…

21살의 대학생 파라 팔라비는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이란의 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와 결혼했다. 당시 국왕은 이미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은 40세의 중년 남성이었고, 파라는 무려 19살이나 어린 신부였다. 1959년, 테헤란의 골레스탄 궁전에서 열린 결혼식은 당대 최고급의 사치와 화려함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이브 생로랑이 직접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했고, 드레스에는 금과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혔다. 그녀가 쓴 티아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핑크 다이아몬드 ‘누르 울 아인’을 장식한 유례없는 보석이었다. 파라는 단숨에 ‘샤바누(황후)’의 칭호를 얻고, 표십 개의 궁전을 오가며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보석과 예술품으로 꾸며진 호화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혁명 앞에서 무너진 제국

그러나 이 화려한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대 ‘백색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국왕이 추진한 근대화 정책은 토지개혁의 실패와 함께 성직자와 전통 상인 계급의 반발을 불러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민중의 불만은 폭발 직전까지 치달았다. 1979년, 이란 혁명이 발발하면서 팔라비 왕조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황후 파라와 가족은 목숨을 건 망명길에 올라 이집트, 미국, 모로코, 파나마를 떠돌며 암살 위협과 생활의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황후에서 역사의 증인으로

망명지에서조차 불운은 계속됐다. 남편 팔라비 국왕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화려한 궁정에서 자란 자녀들 또한 새로운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막내딸 레일라 공주와 차남 알리레자 왕자는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왕가의 비극은 더욱 깊어졌다.
현재 86세가 된 파라 팔라비는 여전히 파리와 메릴랜드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과거 황후였던 그녀는 이제 화려했던 왕궁의 기억보다, 참담한 망명과 상실을 이겨내야 했던 긴 세월을 안고 살아가는 한 노년의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단순한 몰락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고, 문화와 교육,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때 전 세계가 주목한 ‘핑크 다이아몬드 티아라의 신부’는 이제 역사의 무대 뒤편에서, 제국의 마지막 황후로서의 무거운 자취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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