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논란보다 더 큰 타격은 북한 내부에

1989년, 당시 전대협 소속 대학생 임수경은 스물두 살의 나이로 무단 방북에 성공하며 남북한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일본과 독일을 거쳐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입성한 그의 등장은 북한 사회에 ‘사건’ 그 자체였다.

임수경은 45일 동안 북한의 청년들과 접촉하며 전례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김일성과의 만남에서 포옹을 나누고, 길거리에서 기습 연설을 펼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북한 청년들에게 강렬했던 것은 그의 모습이었다. 주체사상을 외워야 했던 북한 대학생들의 눈앞에,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 단발머리를 한 자유로운 또래가 나타난 것이다. 임수경은 그 자체로 연예인 같은 존재가 되었고, 김일성이 직접 건넨 스카프는 그의 상징처럼 회자됐다.
북한은 체제 선전용 카드로 임수경을 내세웠지만, 효과는 정반대였다. 모든 장면이 생방송으로 송출되면서 북한 청년들은 체제가 금해온 ‘다른 세계’를 목격했다. 의도치 않게 북한 내부에 균열을 만든 사건이었다.

돌아온 뒤의 풍경은 더 아이러니했다. 이듬해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석한 북한 기자단은 임수경이 숙청됐을 것이라 짐작했으나, 실제로는 멀쩡히 생활 중이었다. 더 나아가 생중계로 공개된 그의 집에는 컬러 소파와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북한 최고 간부조차 쉽게 누리지 못하는 남한 중산층의 생활수준이 고스란히 전 세계에 전파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체감하며 탈북을 결심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한에서는 ‘종북’ 논란이 뒤따랐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더 큰 타격이 된 셈이다. 임수경의 무단 방북은 체제를 흔들고, 동시에 남북한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 아이콘적 사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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