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는 쇼, 리지웨이는 실전…역사의 반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한국전쟁의 ‘전쟁 영웅’으로 맥아더 장군을 꼽는다. 특히 보수 성향의 사람들에게 이 현상은 단순한 향수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는 6·25 전쟁의 상징, 반공 이데올로기, 그리고 정치적 도구화가 한데 얽혀 있다. 하지만 맥아더라는 인물의 실제 궤적을 들여다보면, 이 추앙이 얼마나 허상에 기댄 것인지 금세 드러난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분명 기적의 한 수였다. 낙동강까지 몰린 전황 속에서 단숨에 서울을 수복하며 전세를 뒤집었으니, 역사의 한 장면으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한국 사회에서 ‘자유를 구한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 승리에 도취한 맥아더는 보급선과 국제 정세를 무시하고 압록강까지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결과는 참혹했다. 중국을 자극한 것이다.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던 30만 중공군이 국경을 넘어오자 전선은 순식간에 붕괴됐다. 서울은 다시 함락됐고, 한반도는 장기전에 휘말렸다. 이른바 ‘1·4 후퇴’라는 이름의 비극이 바로 맥아더의 과욕에서 비롯됐다.

정작 한반도를 끝내 지켜낸 건 다른 인물이었다. 바로 맥아더 해임 뒤 지휘봉을 잡은 리지웨이 장군이다. 그는 병사들에게 수류탄을 하나씩 쥐여주며 “이건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약속”이라고 말했고, 보급선을 정비하면서 전선을 차근차근 회복시켰다. 화려한 쇼맨십 대신 신중한 전술, 연출된 영웅담 대신 치밀한 방어 전략으로 전황을 안정시켰다. 오늘 우리가 보는 휴전선도 그의 지휘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를 ‘실제로’ 구한 장군은 맥아더가 아니라 리지웨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중의 기억은 여전히 맥아더에 머문다. 이유는 단순하다. ‘드라마틱한 상륙작전’은 뉴스와 교과서의 그림이 되지만, ‘묵묵히 버텨낸 전선 방어’는 눈길을 끌지 못했다. 여기에 보수 진영은 맥아더 신화를 정치적으로 재포장했다. 자유공원의 동상은 ‘반공의 수호신’으로 재해석됐고, 매년 집회마다 그의 이름이 호출된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는 맥아더가 ‘정치군인’으로 낙인찍히며 대통령에게 해임당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모른다. 한 장의 멋진 사진과 상징적 장면이 역사의 진실을 덮어버린 것이다.

결국 ‘맥아더 추앙’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이미지 정치의 산물이다. 영웅의 공만 남기고 치명적 과오는 지워진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이념과 정치에 활용하는 관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한국인, 특히 한국 보수가 추앙하는 건 진짜 맥아더인가, 아니면 ‘맥아더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신화’인가. 한반도의 자유를 지켜낸 이름이 있다면, 오히려 잊힌 장군 리지웨이를 떠올려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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