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덮힐 것 같던 그 날, 진실은 어디에?

약 10년 전 자대 배치 19일 만에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던 이등병이 1년 7개월 만에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고,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폭로하며 군내 은폐 의혹을 촉발시켰다. 영원히 덮힐 것 같던 진실이 깨어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사건의 주인공은 구상훈씨다. 구 이병은 2012년 2월 육군 15사단에 자대 배치를 받은 지 불과 19일 만에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당시 군은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다’고 발표했으나, 구 씨 가족들은 뒤통수의 상처를 근거로 구타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군은 해당 상처가 욕창이라는 설명만을 내놓으며 의혹을 일축했다.
기적적인 회복과 폭로

식물인간 상태였던 구 이병은 2013년 9월, 1년 7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이후 상태가 호전되어 2014년 9월에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구 이병은 선임병 7명에게 창고 뒤쪽으로 불려가 각목으로 머리를 구타당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쏟아냈고, 가해자로 지목된 선임병들의 이름까지 기억해냈다.
가족들은 이를 근거로 군이 사건을 은폐했다며 형사소송을 준비했다. 파문이 커지자 육군은 2014년 11월 브리핑을 통해 “재수사를 통해 가족들이 주장하는 구타 의혹을 규명할 계획”이라 밝혔다.
군의 재조사 결과와 법원의 판단

그러나 2014년 12월, 육군 중앙수사단은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구 이병이 쓰러질 당시 동료 병사들의 구타 및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군은 구 이병의 발병 원인이 선천적 질환인 ‘뇌동정맥기형 출혈’이며, 후두부 상흔은 입원 후 발생한 ‘욕창’이라는 의료 자문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또한,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선임병들에 대한 거짓말탐지 검사 및 재수사 결과에서도 혐의가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군의 재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해당 의혹을 보도한 KBS ‘시사기획 창’을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국방부는 보도가 구타를 사고 원인으로 단정하고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주장이 허위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2017년,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 모두 국방부의 청구를 기각하며 KBS 보도를 허위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KBS가 보도 전 구 이병과 가족들의 진술, 진료기록, 수사기록 등을 확인하는 등 사실 확인 노력을 기울였으며, 국방부는 취재 요청에 불응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사건 보도는 공익을 위한 것이며, 그 사실이 중요한 부분에 있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윤 일병 사건, 임 병장 총기 난사사건 등 군내 부조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식물인간 이등병 사건’은 군의 은폐 의혹과 부실 수사 논란을 재점화시키며 군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었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 보도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그 목적이 공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 할 것이고, 그 사실이 중요한 부분에 있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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