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죽고 나이트클럽… 보험의 먹잇감을 찾아서

한복 차림으로 영혼 결혼식을 올리던 여인, 엄인숙. 그녀의 삶은 평범한 유치원 교사의 얼굴로 위장된 ‘살인 설계도’였다. 1976년 7월 29일 서울 중랑구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일탈이 시작됐다. 중학교를 마친 뒤 199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른 학생의 돈을 훔친 사실이 들통나 강제전학을 당했다. 친구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신용카드를 빼앗는 일도 있었다. 1998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가족 몰래 통장 잔액을 인출해 썼다. 범죄는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5년,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엄인숙은 집을 나와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던 남성을 만나 동거했고, 1998년 4월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결혼 뒤에도 그녀는 부모의 재산을 훔쳐 달아났고, 남편과의 생활은 가난과 허영심의 충돌로 매일 불안정했다.

2000년 2월, 세 살배기 딸이 집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사망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그녀의 범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딸의 죽음 이후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은 그녀는 그 약을 남편에게 몰래 먹이기 시작했다. 정신이 혼미해진 남편을 넘어뜨려 뇌진탕을 일으키고, 뾰족한 물건으로 눈을 찔러 실명시켰다. 그녀는 그 모습을 눈물로 덮었다. 병실에서는 헌신적인 아내, 보험사에는 피해자 가족. 그 연극은 완벽했다. 2002년 3월 남편이 결국 숨지자, 그녀는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그리고 새로운 남성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을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출신, 강남 유치원 교사로 속였다. 사실은 고졸 보험설계사였지만, 말투는 부드럽고 교양 있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새 남자친구는 운동선수 출신이었고, 그녀는 또다시 같은 수법을 썼다. 우울증 치료제를 먹이고, 눈을 찔러 실명시키는 식이었다. 입원 중 몰래 혼인신고까지 마친 뒤, 남성이 사망하자 또 다른 보험금을 챙겼다. 그 와중에 그녀는 아들까지 낳았다.

2003년, 그녀의 폭주는 가족으로 향했다. 어머니에게 약을 먹이고 한쪽 눈을 실명시켰고, 오빠의 두 눈까지 멀게 만들었다. 이어 어머니 명의의 남양주 아파트를 몰래 팔아치우고 돈을 챙겼다. 새 집으로 이사하겠다는 핑계로 이사를 미루다 2005년 1월, 집에 불을 질렀다. 이후 자신을 도와주던 가사도우미 집에 얹혀 살다, 내쫓기자 복수심에 그 집에도 방화를 저질렀다. 이 불로 가사도우미의 남편이 숨지고 가족이 다쳤다. 엄인숙은 심지어 피해자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다시 불을 지르려 했다. 그 장면이 CCTV에 찍히면서, 마침내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체포된 그녀는 “마약을 사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고 진술했지만, 조사 과정 내내 실신 연기를 하며 수사를 교란했다. 주변 사람들은 “조용하고 친절한 사람”, “남편을 천사처럼 보살폈던 아내”로 기억했다. 담당 형사조차 “첫인상은 범죄자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키가 크고 말씨가 부드러워 남자들이 쉽게 속아 넘어갔다고 한다.

현재 엄인숙은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자살설이 돌았지만 사실이 아니며, 피해자 가족의 면회조차 거부하고 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면담을 시도했으나, 그녀는 기면증을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오후근 형사는 “면회를 요청해 와서 내의와 칫솔을 사서 보냈더니, 다음엔 브랜드 속옷을 요구했다”고 회상했다. 교도소 안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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