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지옥으로 — 시아누크빌을 삼킨 중국의 돈

캄보디아 남부의 도시 시아누크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유럽 배낭여행객이 사랑한 ‘조용한 해변 마을’이었다. 값싼 숙소, 잔잔한 바다, 느린 시간. 그런데 지금 이곳은 동남아 인신매매와 사이버 범죄의 중심이 되었다. 평화롭던 휴양지가 어떻게 지옥도가 되었을까.

2022년 공개된 한 영상은 모든 걸 바꿔놓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뛰어다니고, 젊은이들이 강물로 몸을 던진다. 화면 속은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국경지대. 베트남 청년들이 캄보디아의 불법 조직에 팔려 노예로 일하다 탈출하는 장면이었다.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도 같은 피해 신고가 잇따랐다.
시작은 ‘그럴듯한 구인 광고’였다. SNS를 통해 취업을 제안받은 청년들은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겼다. 감금된 채 사이버 사기, 즉 보이스피싱에 동원됐다. 말을 거부하면 폭행과 전기 고문이 이어졌다. 굶기거나 다른 조직에 ‘재판매’되기도 했다. 추락사한 피해자의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까지 찍힌 영상도 있었다.

이 끔찍한 범죄의 배경엔 시아누크빌이 있다. 한때는 유럽 백패커들의 천국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어 간판과 카지노만 남은 도시다. 중국의 ‘일대일로’ 자금이 쏟아지며 변화가 시작됐다. 2010년대 중반, 중국 자본이 항만과 고속도로를 세우고 카지노 산업에 투자하면서 도시는 순식간에 변했다. 2015년 15개였던 카지노는 4년 만에 180개로 늘었다. 카지노 도시, 동남아의 ‘미니 마카오’가 된 것이다.
그러나 돈은 주민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중국 관광객은 중국 카지노에서 놀고, 중국 식당에서 밥을 먹고, 중국 호텔에서 잤다. 시아누크빌의 토착 주민들은 월세 폭등으로 밀려났다. 유럽 여행객이 빠져나가자 도시는 폐허가 됐고, 빈 건물은 중국 갱단의 아지트로 바뀌었다. 그 안에서 도박, 폭력, 납치, 살인이 이어졌다.

2019년, 중국 정부가 온라인 도박을 금지하자 상황은 더 악화됐다. 캄보디아 정부도 뒤늦게 도박 단속에 나섰고, 카지노의 자금줄이 끊기자 조직들은 새 범죄를 찾았다. 그게 바로 ‘사이버 스캠’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시스템을 피싱 사기로 전환하면서, 인신매매가 본격화됐다. 노동자가 필요했던 그들은 중국인, 홍콩인, 베트남인, 대만인을 속여 데려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폭행당하고, 팔려가고, 실종됐다.
문제는 이 범죄의 배후에 캄보디아 권력층이 얽혀 있었다는 점이다. 알자지라 탐사보도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감금된 건물 상당수가 국회의원과 재벌, 훈센 총리 측근 소유였다. 수용소 경비원의 복장에는 해당 정치인 계열 기업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일부 시설은 훈센 총리의 조카가 운영하는 경제특구 안에서 발견됐다.

훈센 정권은 40년 가까이 권력을 독점해왔다. 국가의 자원과 경제는 소수 권력층에 집중됐고, 그 틈으로 중국 자본이 스며들었다. 캄보디아의 해외 부채 절반이 중국 자금이며, 주요 개발 사업의 대부분이 중국 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중국과의 유착은 범죄조직까지 덮었다. 권력과 돈이 손을 잡은 결과, 한 도시가 통째로 범죄 허브로 변한 것이다.
이제 시아누크빌은 관광객이 아닌 인신매매 피해자와 사이버 사기범이 넘치는 ‘디지털 지옥’으로 불린다. 유럽 백패커가 선베드에 눕던 자리엔 철조망이 세워졌다. 그리고 그 철조망 너머에서, 낯선 언어의 비명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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