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패권의 진짜 비밀: 전쟁, 네트워크, 그리고 운

하버드의 거물 케네스 로고프가 새 책에서 미국 달러의 ‘신성 불가침’ 서사를 정면으로 걷어찢었다. 제목부터 노골적이다. . 1971년 금태환 파기를 선언한 닉슨 시절, 재무장관 존 코널리가 내뱉은 “달러는 우리의 통화, 문제는 너희의 문제”를 표지에 박았다. 박정호 교수는 그 문장을 다시 소환하며 달러 패권이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전쟁, 네트워크, 심리, 그리고 ‘운’이 만든 구조였다고 핵심을 정리한다.
2차대전 이후 유럽의 금이 미국으로 몰렸고,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달러는 금과 연동된 교환 허브가 됐다. 금태환이 끊어진 뒤에도 달러는 왜 안 무너졌나? 첫째, 이미 세계 결제·금융망이 달러 기반으로 깔렸다. 다음 주 송금이 급한 기업들이 새 시스템 깔릴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둘째, 유동성. 전 세계에 뿌려진 달러가 장부 곳곳을 점령했다. 거래처가 달러를 꺼려도 “가격 3% 깎을 테니 달러로 받자”는 식의 타협이 일상이었다. 셋째, 힘. 미군의 전진 배치와 미국 국력은 “그 나라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겠나”라는 믿음을 붙잡아줬다.

로고프는 경쟁 통화들의 추락도 거울로 들이댄다. 소련 루블은 폐쇄성과 비효율로 스스로 문을 잠갔다. 한때 유력 도전자였던 엔화는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버블 붕괴로 기세가 꺾였다. 유로는 준비통화 2위지만 범유럽 결제통화로 고착, 글로벌 비중이 26%에서 20%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위안화는 정치적 불투명성과 법·금융 시스템 신뢰 부족이 발목을 잡는다. 이 대목에서 질문은 되돌아온다. 폐쇄성, 정치 리스크, 신뢰 훼손… 지금 그 그림자를 미국 스스로 키우고 있지 않은가.
암호화폐도 빼지 않는다. 지하경제가 선호하던 ‘현찰 달러’의 일부 기능을 비트코인이 대체했다. 국경, 계좌, 실명 확인을 우회하려는 수요가 살아 있는 한, 달러의 현금 패권은 서서히 갉아먹힌다.
달러의 초과 특권도 쏟아낸다. 미국은 환율 위험이 없다. 세계가 달러로 결제하는 한 미국 국채는 사실상의 ‘금리 붙는 달러’다.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는 알아서 사준다. 그 결과 미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경상수지 적자를 오래 이어가도 시스템이 버틴다. 위기가 터질수록 안전자산 선호가 달러로 몰리는 ‘폭풍 속 순항’의 역설도 작동한다. 하지만 특권에는 책임이 붙는다. 글로벌 유동성 공급의 최종 보루라는 책무다. 여기서 미국의 정치가 흔들리면 달러 신뢰도 함께 흔들린다.

로고프가 가장 크게 경고한 건 내부 리스크다. 연준 독립성은 돌에 새긴 성경 구절이 아니다. 정치 압력이 금리 결정에 스며드는 순간, 달러는 ‘시장 규율’이 아닌 ‘정치 프로젝트’가 된다. 미국의 양극화, 천정부지로 치솟는 연방부채, 연준의 선택이 세계 각국의 통화정책을 인질로 잡는 기형적 연동도 폭탄 뇌관이다.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 금리는 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인정했던 현실, 환율 1,500원 공포에 성장보다 환방어를 우선해야 했던 딜레마가 그 증거다. 브릭스 국가들은 불만을 학습했고, 각자의 이익만 외치던 과거에서 한 발 빼며 새로운 결제 블록을 모색한다. 로고프는 “앞으로 5년, 큰 충격이 올 수 있다”고 못 박는다. 달러의 내구성은 과거의 관성으로 버티지만, 균열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된다.
박정호 교수의 요지는 간단하다. 달러는 신화가 아니라 시스템이고, 시스템은 관리 대상이다. 네트워크·유동성·신뢰가 만든 경제적 생태계를 정치가 훼손하면, 달러의 시대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마모된다. 독자는 ‘달러가 무너지면?’을 넘어서 ‘왜 아직 안 무너졌고, 어디서부터 금이 가는가’를 직시하게 된다. 투자자는 이 책을 읽고 포지션을 바꿀 수도, 헤지를 두툼하게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현실 감각이다. 달러의 적은 경쟁 통화가 아니라 오만과 무능이다. 그건 바깥이 아니라 워싱턴 안쪽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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