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 사업은 왜 죽었나: 한 번의 유출, 20년의 지연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은 20년 전 이미 문턱까지 갔다가, 한 방에 무너졌다. 이름부터 비밀스러운 362 사업. 2003년 6월 2일, 국방장관이 고(故)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보고했고, 곧장 착수 지시가 떨어졌다. 시나리오는 간단했다. 2006년까지 개념설계, 2007년 건조 개시, 2012년 초도함 전력화, 2020년까지 세 척 완편. 모델은 프랑스 바라쿠다급. 원자로 기본설계, 작전요구성능 반영, 함체 개념설계까지 끝냈다. 한마디로, 버튼만 누르면 철판 자르고 배를 세우는 단계였다.
그런데 2004년 초, 한 일간지의 보도로 비밀이 새 나갔다. 주변국이 소리 높였고, 국내에선 “그런 계획 없다”는 부인이 이어졌다. 사업단은 반년 만에 해체됐다. 이후엔 IAEA 사찰, 육군 중심 파워게임설 등 서로 다른 증언만 떠돈다. 기록은 묻혔고, 결과만 남았다. 한국의 핵잠은 20년 늦어졌다.
왜 이렇게 예민했나. 핵잠은 디젤과 급이 다르다. 공기가 필요 없어 스노클링 할 이유가 없다. 원자로 전력으로 물을 분해해 산소와 담수를 뽑아 쓰고, 이론상 연료 교체 전까지 계속 잠항한다. 현실적으로도 두 달 잠항은 충분하다. 속도, 작전반경, 생존성, 무엇보다 은밀성에서 게임이 갈린다. 동해와 남해 깊은 수역에 한 척만 숨어 있어도, 상대는 좌표를 잃는다. SLBM 6셀에서 10셀로 확장되는 한국식 플랫폼이 뒤따르면 억제력은 전술이 아니라 체감 공포가 된다. 북한의 SLBM, 주변국 원양 전개를 추적·차단하는 가장 현실적인 도구가 바로 SSN이다.
핵심은 결국 연료다. 핵잠 연료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의 영역이다. 그래서 한국은 수십 년간 농축·재처리 금지의 틀에 묶여 있었다. 그 사이 원전용 저농축우라늄은 100% 수입, 러시아 의존 비중이 들쭉날쭉했다. 에너지 안보까지 취약한 구조였다. 362 사업이 실패한 진짜 이유는 여러가지다. 보도 유출로 비밀이 깨졌고, 외교적 압박이 겹쳤고, 국내 정치·군 내부 역학이 흔들었다. 그 대가가 20년이다.
그러나 이제 판이 바뀌었다. 핵잠 보유 승인, 연료 농축과 재처리의 부분적 문 열림이 거론되는 지금,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산업·인력·규제 로드맵을 동시 가동해 전력화를 일정으로 만든다. 둘째, 농축·재처리 전 과정의 투명 거버넌스로 IAEA 감시 하에 운영하되, 평시 민수·잠수함 연료 주기를 닫는다. 셋째, 러시아 리스크를 끊기 위해 연료 조달 다변화와 국내 주기 일부 내재화를 병행한다. 넷째, 장보고-III 배치2·3을 SSN 전환 기준으로 정렬해 동해·남해 순환배치를 가능한 구조로 재설계한다. 핵무기를 만드는가, 안 만드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억제력은 의도가 아니라 능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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