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의 덫에 갇힌 일본, 커스터마이징으로 질주한 한국”

1970년대 후반, 한국 조선업은 일본의 그늘 아래 있었다. 일본은 세계 조선시장을 쥐락펴락했고, 전 세계 선주의 주문은 거의 모두 일본으로 향했다. 그러나 불과 20년 만에,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조선왕국의 부활처럼 한국이 세계 1위 자리에 올라섰고, 일본은 뒤를 쫓는 처지로 밀려났다. 이 극적인 전환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선택이 있었다. ‘표준화’로 갈 것인가, ‘커스터마이징’으로 갈 것인가.
일본은 ‘우리가 표준이다’라는 오만에 취해 있었다. 세계 1위의 자신감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일본 조선업계는 선주가 원하는 세부 설계나 특수 기능보다는, 자국이 정한 표준선(standard ship)만을 고집했다. “이게 최적이니 이걸 사라”는 식이었다. 효율과 생산성은 높였지만, 시장의 흐름을 읽는 감각은 마비됐다. 글로벌 선주들은 더 이상 ‘일본식 완벽함’보다 ‘자신이 원하는 배’를 원했다.

그 틈을 파고든 게 바로 한국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계획조선제도’를 도입하며 대규모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조선소의 태도에서 갈렸다. 한국은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선주가 원하면 무엇이든 설계부터 다시 짰다. 엔진 구조, 선체 크기, 연료 효율, 선내 편의시설까지 ‘맞춤형 제작’을 실현했다. “우린 당신이 원하는 배를 만든다.” 이 말 한마디가 세계 시장을 뒤흔들었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주문은 쏟아졌고, 설계와 생산 현장은 밤낮없이 돌아갔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같은 신흥 조선 3사는 ‘유연성’과 ‘속도’로 일본을 무너뜨렸다. 일본이 표준선을 찍어내는 동안, 한국은 고객의 요구를 설계도에 새겼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조선산업의 룰을 바꾼 결정적 순간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 유산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지금도, 초대형 LNG 운반선이나 해양 플랜트, 군수 함정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한국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50년 전의 ‘커스터마이징 철학’이 아직도 살아 있는 셈이다.
그때의 선택이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국가 산업 전략의 DNA를 바꾼 ‘산업 진화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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