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루프 – 김두한과 차지철의 유명한 국회 맞짱 일화

김두한은 일제강점기 종로를 주름잡던 주먹의 세계에서 시작해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은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거물급 법조인과 집권 세력 후보를 제치고 종로 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500표 차이의 근소한 승리로 당선되었다. 이는 정권의 부정부패를 꼬집고 새로운 정치판을 원했던 민심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의 국회의원 활동 중에는 과격한 일화도 많았다.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추궁하던 중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에게 인분을 투척하여 국회의원직을 잃고 구속되기도 했다. 이는 김두한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정한 법에 따라 불의를 응징한 인물’로 평가받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정치깡패들로부터 야당 의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차지철은 박정희 정권 말기, 대통령 경호실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2인자’로 군림했던 인물이다. 그는 육사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 장성들을 부하로 거느리며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려 했으며, 민간인 신분임에도 군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려 하는 등 월권 행위를 일삼았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당시 유신 시대의 차지철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차지철은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강경 일변도의 대응을 주도하는 등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결국 10·26 사건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한 원인이 되었다.

김두한과 차지철이 국회에서 충돌한 일화는 차지철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선 의원 시절, 차지철은 다른 의원들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이때 국회에 같은 기수로 있었던 김두한은 이러한 차지철의 행동을 좋지 않게 보았다.
한번은 김두한이 상의를 벗고 차지철 앞에 서서 “차 의원이 그렇게 힘이 세다며? 그럼 힘없는 다른 의원들은 건드리지 말고 나하고 맞붙는 게 어떠한가?”라고 일침을 날렸다고 한다. 이에 차지철은 김두한 앞에서 아무 소리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는 당시 김두한의 위세와 차지철의 권력 초기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사건은 김두한이 가진 ‘싸움의 천재’로서의 명성과,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기 전 차지철의 불안정한 위치를 동시에 보여주는 일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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