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춘천역 9살 소녀 살인 사건으로 몰린 정원섭씨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연

1972년 9월 27일,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에서 파출소장의 어린 딸이 강간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 사건은 곧바로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된 경찰에 의해 만화가게 주인 정원섭 씨가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결국 정 씨는 고문과 가혹행위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 2개월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 사건은 훗날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1972년 9월 27일 저녁, 춘천역전파출소장의 9세 딸 J 양은 만화방에 들렀다가 실종되었고, 이틀 뒤인 29일 춘천시 우두동의 한 논둑길에서 나체 상태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시한부 검거령을 내리며 사건 해결을 독려했고, 이에 쫓기던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만화방 점표를 단서로 만화방 주인 정원섭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경찰은 정 씨가 J 양을 만화방 TV를 보여주겠다며 인근 논둑길로 유인하여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정 씨의 가게 종업원들이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고,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연필과 빗이 정 씨 아들과 종업원의 것이라는 점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정 씨는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못 이겨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그는 경찰로부터 옷을 벗기고 구타하거나 찬물을 붓는 등 고문을 당했으며, 잠을 재우지 않고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가혹행위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폭행 피해를 주장했던 종업원들은 법정에서 경찰의 고문과 감금으로 인해 허위 진술을 강요당했다고 증언하며 사건의 진실 규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연필과 빗 또한 증거로서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제시한 현장 검증 조서와는 다른 색깔의 연필이 발견되었고, 정 씨 아들의 필통을 제출받은 후 경찰이 임의로 연필을 현장에 놓아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더불어,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의 혈액형이 정 씨의 혈액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의문점으로 남았다.
이러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1973년 3월 30일 춘천지방법원은 정 씨에게 강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15년간 복역한 정 씨는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되었으나,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한 그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춘천 강간살인 조작 의혹 사건’으로 규정하고 재심을 권고했다. 2008년 11월 28일, 춘천지방법원은 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2011년 10월 27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확정되어 39년간의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다.
무죄 판결 이후 정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26억 원 배상 판결을 받고도 소멸시효 완성 등의 이유로 최종적으로 한 푼의 배상금도 받지 못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헌법상 금전적 배상 의무를 직접적으로 지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며, 이는 정 씨와 그의 유족들에게 큰 아픔으로 남았다.
한편, 정원섭씨는 2021년 3월 28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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