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복수를 꿈꿨던 어린시절의 이재명 대통령 이야기

경북 안동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이재명은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서 자라났다. 너무나 가난하여 생년월일조차 불분명했고, 출생 신고도 1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같은 궁핍은 그의 아버지 이경희 씨의 행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재명의 아버지 이경희 씨는 대구 청구대를 다녔던 당시로서는 ‘엘리트’에 속했으나, 학교를 중퇴한 뒤 순경과 교사로 근무하다 노름에 빠지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이후 탄광 관리자 등을 전전하다 화전민으로 정착하여 이재명을 낳았다. 마을 대소사를 도우며 좋은 평판을 받기도 했지만, 가정에는 소홀했다.
결국 아버지는 노름을 끊지 못하고 농사짓던 밭을 포함한 재산을 모두 탕진했으며,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남겨둔 채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가족의 뒷바라지는 오롯이 어머니 구호명 씨의 몫이 되었다. 당시 이재명은 산에서 땔감을 모아오고 40리 길을 걸어 밀가루를 얻어왔을 정도로 힘든 생활을 이어갔다.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만 키워가던 이재명에게 3년 만에 연락이 온 것은 아버지가 성남에 터를 잡았다는 소식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채 성남으로 이사 간 이재명은 10대 어린 나이에 공장 ‘손흥공(소년 노동자)’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공장 생활 6년 동안 1970년대 후반 노동자의 잔혹사를 몸으로 겪었다. 몸 곳곳에 흉터가 생기고, 팔이 굽었으며, 후각을 상실하는 등 극심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세상을 하직하려는 시도까지 했었다고 알려졌다.
이후 이재명이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공부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는 이를 반대하며 그에게 절망감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단절과 갈등을 겪었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이재명이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당시, 위독했던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고, 그로부터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에게 복수를 꿈꿨던 소년은 결국 가난과 절망을 이겨내고 성공을 이뤘으며, 마지막 순간에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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