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못 본 역사’, 독보적 객관성이 세계를 움직였다

동아시아 각국 왕조들 역시 역사를 기록하는 실록 형태의 문서를 제작해왔다. 그러나 중국 명나라의 ‘황명실록’이나 일본의 유사 기록물들은 그 양과 질, 그리고 객관성 면에서 한계를 보이며 대부분 국제적 공인을 받지 못했다.
‘조선왕조실록’의 가치는 이들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중국 명나라의 ‘황명실록’은 약 3천 권 규모임에도 총 글자 수는 1600만 자에 불과하다.
이는 총 약 5천만 자(4,964만 자 이상)에 이르는 방대한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면 기록의 양과 깊이가 현저히 뒤처진다는 평가다. 일본에도 실록 형태의 기록이 존재하나 내용이 부실하고 사실성이 낮아 사료로서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기록물 ‘조선왕조실록’은 동아시아 왕조의 유사 기록물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핵심 배경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객관성’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왕조 기록물 중 독보적 ‘객관성’ 확보
실록이 국제적 공인을 받은 결정적 이유는 ‘기록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조선만의 독특하고 철저한 시스템 때문이었다. 조선의 실록은 사관들이 왕이 생존해 있을 때 극비리에 사초를 작성하고, 왕이 승하한 후에야 모든 기록을 모아 편찬했다. 이 과정에서 왕 본인이 자신의 기록에 열람이나 수정 등 그 어떤 영향도 행사할 수 없었다.

성군 세종대왕조차 부왕 태종의 실록 열람을 시도했으나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일화는 당시 기록의 중립성을 지키려던 엄격한 분위기를 방증한다.
인류의 유산으로 인정받다
철저한 기밀 유지와 사후 편찬이라는 엄격한 장치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은 당대 역사를 가장 진실에 가깝게 기록한 역사서로 자리매김했다.
어떤 왕조의 역사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했고, 이러한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당당히 등재됐다. 이는 역사의 진실을 담아내려는 조선 사관들의 헌신과 장인정신이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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