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영원한 이인자 이학수의 영광과 몰락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과정에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 철학을 실무로 구현한 비서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 중심에는 14년간 비서실장과 구조조정본부장을 역임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이학수 전 부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의 복심이자 분신으로 통하며 삼성 그룹의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한 현대 경제사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학수는 1946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상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뒤 1971년 삼성 공채로 입사했다. 제일모직 경리과에서 시작해 그룹 내 최고의 재무통으로 인정받으며 이건희 회장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아 삼성자동차 포기 등 과감한 결단으로 삼성의 생존과 성장을 이끌어냈다.

이건희 회장은 이학수의 균형 감각과 폭넓은 시야를 높게 평가하며 그룹의 핵심적인 현안을 그와 유일하게 의논했다. 그는 총수 일가의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하며 경영권 승계와 비자금 논란 등 삼성을 둘러싼 거센 폭풍우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 편법 승계 논란의 주역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회장을 향한 충성심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1인자와 2인자의 관계는 권력의 속성상 결국 갈등과 파국을 피하지 못했다. 이건희 회장은 아들 이재용의 시대를 앞두고 비대해진 이인자의 세력을 경계하며 2010년 그를 전격적으로 경질했다. 이른바 신묘사화로 불리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통해 이학수 사단은 삼성의 주류 무대에서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학수는 삼성 재직 시절 축적한 천문학적인 재산으로도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으며 1조 원대 자산가로 등극했다. 서울 강남 대치동의 LMB 타워는 그와 부인의 이니셜을 딴 건물로 그의 부의 규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산이다. 한때는 이건희 회장이 그의 과도한 부동산 매입을 꾸짖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그의 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의 자녀들 또한 고려대를 졸업하고 사모펀드 업계의 거물로 성장하며 재계에서 남다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장남 이상훈과 차남 이상호는 글로벌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를 맡아 수조 원대 딜을 주도하며 부친의 뒤를 잇는 행보를 보인다. 이학수 가문은 삼성이라는 거대 제국의 그늘을 벗어나 독자적인 금융 자본 세력으로 완전히 뿌리를 내린 셈이다.
이학수 전 부회장은 삼성에서 37년을 헌신하며 그룹의 영광과 오욕을 모두 함께한 산증인이자 역사의 주인공이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모델이 될 만큼 그의 삶은 극적이며 한국 자본주의의 명암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그는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나 삼성이란 이름이 존재하는 한 그의 이름은 권력의 이면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남을 것이다.
결국 이학수의 생애는 절대 권력 곁에서 이인자가 걸어야 할 운명적인 길과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충성과 실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져야 했던 그의 모습은 서글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략가는 이제 거대한 빌딩 숲 사이에서 자신의 제국을 바라보며 영원한 이인자의 삶을 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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