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시작은 아버지가 내린 결정에서 비롯

방송과 사업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여에스더 박사의 극적인 가족사와 성공 신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산균 브랜드로 큰 성공을 거두며 ‘자수성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녀의 뒤에는 대구·경북 지역을 호령했던 재벌가의 영광과 몰락, 그리고 이를 극복한 집념의 서사가 숨어있었다.

여 박사의 할아버지는 과거 대구일보의 사주이자 대구·경북 경제계의 거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위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자택을 방문할 정도였으며, 삼성의 이병철 회장, LG의 구인회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업을 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들의 화려한 시절은 정치적 풍랑을 맞으며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비극의 시작은 대구일보 기획실장이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내린 결정에서 비롯됐다.

선거 당시 아무도 김대중 후보의 선거 전단을 제작해주지 않던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 여 박사의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 전단을 제작하고 대구 시내에 배포했다. 이 일로 인해 아버지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으며, 온 가족은 국가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정부의 보복성 조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집안의 막대한 자산은 강제로 매각되었고, 가족들은 쫓기듯 일본으로 건너가야만 했다. 여 박사는 할아버지가 위암으로 별세한 후에야 비로소 고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가문의 몰락이라는 거대한 시련 속에서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단 4일간의 집중적인 공부만으로 전교 1등을 차지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발견한 그녀는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현재 여 박사는 건강기능식품 기업의 대표이사로서 연 매출 3,000억 원이 넘는 기록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그녀의 브랜드는 유산균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재벌가 후손이라는 과거의 배경에 안주하지 않고, 가문의 비극을 딛고 일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거대한 기업을 일궈낸 그녀의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