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의 유시민 장관 임명 막전막후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가 보건복지부 장관 인선을 두고 하루 종일 격렬한 설전을 벌였다. 노 대통령은 당시 유시민 의원을 장관으로 강력히 추천했으나 이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 총리는 대통령의 뜻을 꺾기 위해 유시민 본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장관직 사양을 종용하는 강수까지 두었다.
유시민 의원이 장관직을 고사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노 대통령은 이 총리에게 사퇴를 언급할 정도로 크게 분노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노 대통령은 총리직을 그만두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확고한 인사 의지를 관철하려 했다. 결국 이 총리는 이번 한 번만 대통령의 뜻을 수용하되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반복될 경우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이후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유시민 후보자는 과거의 정치적 행보와 허물을 인정하며 낮은 자세로 임해 눈길을 끌었다. 야당 의원들은 국민연금법 위반 의혹과 신고 의무 미이행 등을 거론하며 유 후보자를 거세게 몰아붙이며 압박했다. 특히 박재완 의원을 비롯한 위원들의 날카로운 질의가 이어졌으나 유 후보자는 고의적인 회피가 아니었음을 소상히 해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유시민 장관의 임명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노 대통령은 이 총리에게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강조했다. 월요일 오찬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장관 임명 통과 사실을 언급하며 이 총리의 반대를 기분 좋게 무마시켰다. 이 총리는 당시 노 대통령의 확신에 찬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유시민 장관의 등용은 참여정부의 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나 당정 간의 극심한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 특유의 돌파력과 인재에 대한 신뢰가 총리와의 정면충돌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 사건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와 책임 총리제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남았다.
당시 여권 내부에서도 유시민 장관 임명을 두고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며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유시민이 내각에 진입하는 것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고 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를 끝까지 책임지며 국정 운영의 핵심 파트너로 기용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해찬 총리는 훗날 이 당시를 회상하며 대통령과 가장 즐거웠던 기억 중 하나로 대판 싸웠던 순간을 꼽았다. 비록 정책과 인사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했으나 이는 국정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충정 어린 토론이었음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과 이 총리의 이러한 인간적인 교감과 갈등은 참여정부 국정 운영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시민 장관은 재임 기간 동안 국민연금 개혁 등 굵직한 보건복지 현안들을 다루며 행정가로서의 역량을 시험받았다. 청문회 당시의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업무에 매진하며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정치인 유시민에서 장관 유시민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대중에게도 신선한 충격과 기대를 동시에 안겨준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인사가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으며 승리로 끝난 이 에피소드는 권력 핵심부의 비화를 담고 있다. 대통령이 총리에게 그만두라고 말할 정도의 긴박한 상황은 당시 청와대 내부의 긴장감을 짐작하게 한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었다면 결코 웃으며 회상할 수 없는 치열했던 권력 내부의 기록인 셈이다.
정치적 동지이자 국정 파트너였던 두 사람의 불꽃 튀는 대결은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명장면으로 기록되었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대통령과 현실적 판단을 중시하는 총리의 조합이 빚어낸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유시민 장관은 임무를 완수했고 노 대통령의 안목은 이 총리의 우려를 넘어선 결실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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