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루프 – 삼풍백화점 참사에 망언을 한 이준 회장의 최후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며 502명의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를 낸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참사는 단순한 부실 공사를 넘어,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했던 기업의 탐욕과 이를 묵인한 사회 구조의 총체적인 부실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특히 사고 이후 삼풍그룹 회장이었던 이준의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샀으며, 그의 ‘역대급 뻔뻔한 망언’은 이 참사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삼풍백화점은 붕괴 조짐이 수개월 전부터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강행했다. 붕괴 당일에도 5층에서 심각한 균열과 침하 현상이 발견되었고, 전문가들은 즉각적인 대피와 보수를 권고했지만, 이준 회장은 경영진과의 회의에서 영업 중단을 거부했다. 오히려 사고 발생 2시간 전에도 영업을 계속하며 보수 공사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붕괴 17분 전에는 시설부장으로부터 붕괴 진행 사실을 보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 안전한 B동 건물로 대피했을 뿐, 고객과 직원에 대한 대피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참사 이후,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소환된 이준 회장은 기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조사하자고 여기 데려오더니 사진 찍으려고 온 거네. 여보쇼. (백화점이) 무너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 피해도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알고 싶거든. 사장에게 물어보쇼.”

이 발언은 수많은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목숨보다 회사의 재산을 우선시하는 그의 극단적인 물질만능주의와 무책임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그의 뻔뻔한 태도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슬픔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으며, 대한민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과 부패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준 회장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받아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는 5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낸 참사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뇌물을 주고 불법 건축을 승인한 공무원들 역시 처벌받았지만, 사고의 근본 원인이었던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대한민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이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함께 안전 불감증과 부패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사고 현장에는 추모 공원이 아닌 고가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유족들의 위령탑 건립 요구는 여러 차례 좌절되었다. 이 비극은 이후 세월호 참사, 순살 아파트 붕괴 등 유사한 형태의 인재가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며, 여전히 ‘돈이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시되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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