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누빈 조선의 청년
세종대왕의 직계 후손 중 한 사람이 있지만, 그의 이름은 아직도 대중에게 낯섭니다. 조선의 마지막 외교관으로 불린 이위종. 그는 ‘훈남 지식인’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국제 감각을 갖춘 조선의 코스모폴리탄이었습니다. 그러나 화려했던 삶의 시작과 달리, 그의 마지막은 너무도 쓸쓸했습니다.
1884년 한성에서 태어난 이위종은 세종대왕의 14대손이자 광평대군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버지 이범진을 따라 미국·프랑스·러시아를 오가며 성장한 그는 영어, 불어, 러시아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미 국제 사회를 경험한 그는, 조선이 배출한 보기 드문 세계인으로 평가받습니다.
헤이그에서 외친 ‘조선의 독립’
1907년, 이위종은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로 만국평화회의 현장에 섰습니다. 회의장 입장은 끝내 거부당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유창한 프랑스어로 “조선은 일본의 불법적 지배에 희생되고 있다”는 호소를 전하며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직설적 발언은 회의장을 뜨겁게 달궜고, 한동안 해외 언론에서는 ‘대한제국의 목소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이후, 그는 러시아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며 삶의 궤적을 완전히 바꿔야 했습니다. 본명을 숨기고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리’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사회에 몸을 담았고, 제1차 세계대전에는 러시아군 장교로 참전했습니다. 이후 볼셰비키 혁명에도 가담해 붉은 군대 장교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의 사상은 근왕주의에서 사회주의까지, 격변의 시대와 함께 크게 변화했습니다.
무덤조차 없는 쓸쓸한 최후
공식 기록은 1차 대전 중 전사로 끝나 있지만, 최근 발굴된 자서전에서는 1924년까지 생존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행적은 불투명합니다. 정확한 사망 연도와 장소조차 알 수 없고, 묘지 또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만이 그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혈통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러시아와 시베리아 곳곳에는 세종대왕의 피를 이은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한 인물의 흔적이, 후손들의 삶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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