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법’은 놓쳤지만 ‘정’으로 이겼다

1974년, 오리온이 세상에 내놓은 ‘초코파이’는 한국 제과업계의 판을 바꿔 놓았다. 미국 출장 중 개발팀이 우연히 본 ‘문파이(Moon Pie)’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년간 연구 끝에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당시 가격은 50원. 출시 첫해에만 매출 10억 원을 올리며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학교 앞 문방구마다 초코파이를 사려는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공장에는 불이 꺼질 새가 없었다.
그러나 기적적인 성공 뒤엔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상표를 ‘오리온 초코파이’로만 등록해 ‘초코파이’ 자체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 허점을 눈치챈 경쟁사들은 곧바로 ‘롯데 초코파이’, ‘크라운 초코파이’ 등 유사 제품을 쏟아냈다. 누구나 초코파이란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자 시장은 혼란에 빠졌고, 오리온의 독점 지위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뒤늦게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대법원은 “초코파이는 일반 명사로 볼 수 있다”며 경쟁사의 손을 들어줬다.

모든 걸 잃은 듯했지만 오리온은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다. 이름이 아닌 ‘정(情)’에 초점을 맞춘 감정 마케팅이었다. 1990년대 초,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광고 문구가 등장했다. 초코파이를 주고받는 장면을 ‘정을 나누는 순간’으로 그려내며 단순한 과자가 아닌 ‘마음의 상징’으로 포지셔닝했다. 그 한 문장이 브랜드를 살렸다. 초코파이=정이라는 인식이 굳어지자, 소비자들은 이름이 아닌 감정으로 오리온을 기억하게 됐다.

이후 오리온은 해외 시장으로 방향을 돌렸다. 중국에서는 ‘情派(칭파이)’라는 현지 브랜드로 진출했고, 베트남에서는 가족 간의 선물로 인기를 끌었다.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까지 판매망을 확장하며 초코파이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의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대에 들어 오리온은 초코파이 단일 브랜드로만 연매출 3조 원을 돌파했다. 상표권 분쟁에서 패한 기업이 세계 시장을 장악한 아이러니한 성공이었다.
오리온은 이름을 잃었지만,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초코파이는 하나의 제품을 넘어 세대와 문화를 잇는 상징이 되었다. 그들이 증명한 건 단 하나였다. 브랜드의 가치는 법이 아닌 마음이 만든다는 사실이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