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도 중국도 김정은 이용만 했다… 관계 균열 현실화
북중러가 단단한 철판처럼 붙어 있다는 인식은 이제 현실과 멀어졌다. 화면 속 임철균 위원은 이 세 나라 관계를 화려한 ‘반미 연합’이 아니라, 서로 필요한 만큼만 맞물린 거친 거래의 장으로 그린다. 북한은 러시아에 병력과 탄약을 통째로 밀어 넣으며 얻을 수 있는 건 모조리 긁어모으는 중이고, 러시아는 승패 불명확한 전쟁 한복판에서 북한의 값싼 인력과 군수품을 급한 대로 끌어다 쓰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두고 머릿속 계산기를 쉴 틈 없이 두드리며 몸을 사리는 상황이다. 세 나라의 겉모습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언제든 틀어질 여지가 많은 취약한 구조다.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병력은 일부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전장 훈련을 받고 있는 인원들이 상당하다. 북한의 신형 자주포, 대전차 미사일, 각종 탄약은 이미 전쟁터에서 식별됐고, 과거 불발이 잦던 북한산 탄약을 제대로 쓰기 위해 러시아 기술자들이 직접 북한에 투입되기도 했다. 북한 입장에서 이 거래는 국가 수준을 끌어올릴 마지막 기회처럼 보인다. 정찰위성 해상도, 공군 현대화, 드론 전력, 잠수함 기술 등 ‘지금 당장 필요하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분야’에 러시아가 원하는 만큼의 기술 지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다. 러시아가 깔끔한 승리를 가져갈 가능성은 낮다. 축난 경제, 길어진 전쟁, 약해진 정권 입지를 생각하면, 전쟁 이후에도 북한을 지금처럼 챙겨줄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북한이 제공할 수 있는 카드는 인력·탄약 정도인데, 재건이 필요한 러시아에게 그 가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북한은 러시아의 원유·식량·자원을 절대적으로 원한다. 그래서 북한은 ‘혈맹’이라는 단어를 최대한 끌어올리며 이 관계를 유지하려 하겠지만, 러시아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거리를 둘 수 있는 위치다.
북한은 북중러 삼각구도 안에서도 메인 플레이어가 아니다. 미국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보조 축이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중동·대만·이란까지 전방위로 끌려 다니는 상황이다. 이때 북한이 탄도탄을 쏘거나 ICBM을 들이밀면 미국의 부담은 자연스럽게 동북아로 분산된다. 그 틈을 이용해 북한은 러시아·중국·이란에서 필요한 자원과 기술을 챙긴다. 글로벌 분쟁이 많아질수록 북한의 이 장사는 더 활발해진다. 그래서 북한은 향후에도 도발 빈도와 수위를 높여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조용한 이유는 따로 있다. 김정은은 9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지난 8차 당대회에서 내걸었던 공약 중 군사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을 실패한 상황이다. 러시아 파병으로 병력과 탄약이 크게 소모됐고, 군수기지가 몰린 자강도는 대규모 수해까지 겹쳤다. 북한의 재래식 전력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고, 소모된 탄약을 다시 채울 능력도 부족하다. 한국을 상대로 고강도 도발을 걸다가 장기전으로 번지면 손해가 더 크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 잠시 숨을 고르고 한국 새 정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중이다. 다만 북한이 한국 정부가 자신들의 계산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다시 도발 모드로 들어갈 것은 거의 확실하다.
결국 북중러는 겉으로만 단단한 연합이고, 실질적으로는 언제든 균열이 날 수 있는 이해관계 기반의 동맹 흉내다. 김정은은 그 사이에서 기회를 극대화하려 몸집을 부풀리고 있지만, 러시아·중국은 필요하면 손잡고 필요 없으면 밀어낼 수 있는 냉정한 계산법을 쓴다. 그 속에서 한반도의 전략적 긴장은 더 팽팽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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