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강제로 납북되어 북한에 남았던 대한항공 승무원 성경희씨의 근황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 YS-11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을 태우고 운항 중이던 이 비행기는 강원도 평창군 상공에서 고정 간첩 조창희에 의해 납치되어 북한 함경남도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했다. 이 사건으로 총 51명 중 39명의 승객만이 66일 만에 송환되었으나, 승무원 4명과 승객 8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12명 중에는 대한항공 승무원 성경희(당시 23세) 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 씨는 사건 당일 비번이었으나 친구인 동료 승무원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가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다.
32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흐른 2001년 2월 26일, 성경희 씨의 어머니 이후덕(77세) 여사가 제3차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딸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평양 고려호텔에서 딸을 마주한 이 여사는 “엄마”라고 부르는 딸을 끌어안고 30여 년간 쌓였던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이제 여한이 없어. 딸도 보고… 난 이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머니야”라며 성 씨 역시 오열했다.

이 여사는 딸에게 직접 뜬 숄과 남편이 30년 전 사두었던 시계,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성 씨는 어머니와의 상봉 자리에 남편 임영일 씨(김일성대 교수)와 아들 성혁(24세, 군인), 딸 소영(26세) 씨를 동반하여 눈길을 끌었다.
성경희 씨가 납북된 이후, 그녀의 삶은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1992년, 대남 공작원이었던 오길남 씨가 귀순하면서 성 씨가 북한에서 ‘구국의 소리’ 방송 요원으로 활동했으며,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1992년 8월, 평양방송을 통해 성 씨는 “KAL기 입북 이후 승무원들이 ‘의거 입북 용사’로서 환대를 받으며 복된 새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하며 북한에 정착할 뜻을 내비쳤다.
오길남 씨는 성 씨가 서울대 출신 월북 인사 이진영 씨 또는 신원 미상의 남한 출신 월북자와 결혼하려 했으나 중앙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수와 결혼했다고 증언했다.

성경희 씨와 이후덕 여사의 상봉은 수많은 이산가족들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남겼다.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으로 억류된 11명의 생사와 소재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이들의 가족들은 정부에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실태 조사, 귀환 납북자 지원, 가족 상봉 추진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북한이 납북자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어 근본적인 해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경희 씨의 이야기는 분단의 비극과 이산의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하루빨리 모든 납북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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