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돈X랄하며 살았다’던 공주가 한국에 오자 맞닥뜨린 현실

북한 상류층으로 살았던 한 여성이 탈북 후 한국에서 경험한 삶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유학 준비를 고민하던 시절, 벤츠를 타고 예술학원에 등장하는 친구들을 보며 집안의 한계를 직감했고 결국 대학을 포기한 뒤 해외로 나가 돈을 벌기로 결심했던 그의 과거는 한국에 도착한 순간 전혀 다른 국면을 맞는다. 국정원 보호시설에서 처음 들은 “6·25는 북한이 먼저 침공했다”는 말은 그를 혼란에 빠뜨렸고, 자유로운 발언 하나에도 주변 시선이 얼어붙던 한국 사회 적응 과정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북한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밑바닥 노동’에 뛰어들었다. 오전엔 골프 연습장 프런트, 저녁엔 식당에서 설거지, 자정 이후엔 이태원의 바에서 컵을 닦으며 하루 20시간씩 일했다. 주 6일 이런 지옥 같은 스케줄을 이어가며 6개월 동안 벌어들인 돈은 250만 원. 그마저도 쓰지 못한 채 말라가는 몸을 방치한 끝에 종합병원 검사에서 비형간염 보균자에 A형간염까지 겹쳤고, 바이러스 수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의사는 “한 달만 더 이렇게 살면 죽는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과 눈이 노랗게 변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견디고 있는 삶의 바닥을 마주했다.

북한에서 알바라는 개념조차 모르던 그는 상류층으로 살던 시절 한 달 용돈 몇백 달러를 받으며 맛집을 찾아다녔다. 친구들은 학원을 벤츠나 자가용으로 드나들었고, 부모는 예술대 입시를 위해 집을 털어 붙잡아 주던 구조가 익숙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집이 쪼그라들며 무너졌고, 결국 번번이 이사를 반복하다 반지하를 지나 땅집에서 벌레와 함께 생활하는 데까지 내몰렸다. 부모는 그를 대학 보내기 위해 핸드폰까지 팔았지만, 그는 더 이상 가족에게 짐이 될 수 없다는 판단으로 홀로 해외 노동을 선택했다. 그 결정이 결국 한국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그는 언론인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기자가 됐다. 일본에서 4년을 보내고 돌아오자 조선일보가 특채를 제안했고, 경찰서 사스마리부터 뛰며 글 하나 제대로 쓰기 어려운 초보에서 출발했지만 버텨냈다. 이후 정치부에서 통일부를 출입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였던 남편을 만났다. 열 달 연애 끝에 속도위반으로 첫 아이를 갖고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진짜 한국 적응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강의에 나가 “김정은”이라고 발언하면 청중들이 “저렇게 말해도 되나”라며 당황하는 시선, 드라마에서 보던 대학생 알바 문화를 실제로 몸으로 겪어야 했던 현실, 병원비 때문에 목숨을 갈아 넣을 정도로 일해야 했던 구조. 그 모든 것이 그를 다시 흔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북한에서 잘 살다가 온 건 다 지나간 환상일 뿐이다.” 상류층의 특권은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한국에서의 밑바닥 경험은 그를 다시 살게 만들었다며 웃어 보인다. 그 웃음 뒤엔 벤츠 타던 아이들과의 격차에서 시작된 포기, 벌레와 함께 살던 땅집, 하루 20시간 노동 끝에서 황달 진단을 받던 절망, 그리고 기자로서 자리를 찾아가는 지난한 투쟁이 있다.
북한에서 ‘돈X랄하며 살던 공주’의 이야기는, 결국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 한 인간의 기록이다. 화려했던 과거도, 밑바닥을 긁던 시절도,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모든 길이 그를 지금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그 무게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다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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