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NA EUV 앞에서 멈춘 중국의 시간
노광 공정은 빛으로 회로라는 ‘그림’을 웨이퍼에 찍는 작업이다. NA가 높아질수록 더 미세한 선을 더 또렷하게 그려서,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촘촘히 심을 수 있다. 기존 EUV가 굵은 보드마카라면 하이 NA는 끝이 흔들리지 않는 초정밀 볼펜에 가깝다는 비유가 여기서 나온다.

반도체 현장에선 “주변에 항상 국정원이 있다고 생각하라”는 서늘한 농담이 돈다. 중국 DRAM 기업 CXMT를 둘러싼 기술 유출 수사가 이어지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인력이 대거 연루됐다는 소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기 메모로 10나노급 DRAM 공정 단계와 조건이 넘어갔다고 보고, 관련자들을 잇따라 기소했다.
중국은 2016년 설립된 CXMT를 앞세워 메모리 굴기에 속도를 올렸고, 2025년엔 글로벌 DRAM 점유율이 4%대까지 올라갔다는 분석도 나왔다. 인재를 사오고 시간을 단축하면 한국의 30년 우위도 현실로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진다. 그런데 업계가 더 무섭게 보는 건 인력 유출 자체보다, 따라오려 해도 닿지 않는 장비 격차가 버티는 구조다.
그 격차의 상징이 ASML의 하이 NA EUV, TWINSCAN EXE:5000 계열이다. ASML은 10년 넘게 개발한 이 장비의 첫 모듈을 2023년 12월 인텔에 선적했고, 2024년에는 165톤짜리 장비가 팹에 설치돼 교정에 들어갔다고 공개했다. 시장에선 한 대 가격을 3억5천만~3억8천만 달러로 보는데, 원화로 환산하면 5,000억 원 안팎이란 말이 나온다.

중국이 도면을 훔쳐 복제하면 되지 않냐는 말은 현실에서 바로 막힌다. 이 장비는 ASML조차 단독으로 완성할 수 없어서 독일의 광학, 영국의 초고진공, 미국의 계측과 검사 같은 세계 최정상 공급망이 원자 단위 공차로 맞물려야 돌아간다. 누군가 공정 조건 몇 줄을 들고 넘어간다고 해도, 수십 년 쌓인 ‘지식의 생태계’까지 한꺼번에 옮길 수는 없다.
장비가 없으면 공정이 길어지고, 길어지면 변수와 결함 경로가 폭증한다. 중국은 더 얇은 선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 노광하고 마스크와 공정을 반복하는 식으로 빈틈을 메우려 한다. 하지만 반복은 곧 비용이고, 공정창이 좁아질수록 누적 오차는 불량과 지연으로 돌아온다.
영상에서 말한 ‘100개 만들면 70개를 버린다’는 표현은 과장처럼 들리지만, 핵심은 수율이 흔들리는 순간 사업이 무너진다는 데 있다. 최첨단 칩을 만들었다는 발표가 나와도, 양산에서 꾸준히 뽑아내지 못하면 공급 계약과 가격 경쟁에서 버티기 어렵다. 결국 하이 NA 같은 장비의 ‘한 번에 찍는 힘’이 생산성과 원가를 갈라놓는다.

한국도 손을 놓고 있진 않다. 삼성전자와 ASML은 2023년 한국에 EUV 연구용 팹을 세우기 위해 1조 원 규모의 공동 투자를 발표했고, 차세대 공정과 인프라를 함께 묶겠다고 했다. 장비를 사오는 수준을 넘어 소재, 공정, 측정, 설계 인재와 현장 경험을 연결하는 체력이 관건이 된다.
마지막으로 남는 결론은 장비의 가격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중국은 실패해도 보상하고 성공하면 파격 승진으로 인재를 흔들고, 한 번의 유출이 따라잡을 시간을 통째로 단축시킨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보안과 처벌만 강화하는 게 아니라, 이공계가 ‘한국에선 대우받지 못한다’고 아예 느낄 틈을 없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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