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영웅에서 성수대교의 비극까지…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1980~90년대 대한민국 건설업계의 거물로 군림하며 ‘리비아 대수로 공사’라는 세계적 업적을 남겼던 동아그룹. 하지만 성수대교 붕괴 참사와 외환 위기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아그룹과 그 중심에 있었던 故 최원석 회장의 영욕의 세월을 되짚어본다.
세계를 놀라게 한 ’20세기 최대 토목공사’
동아그룹의 비상은 1945년 충남토건(현 동아건설)의 설립으로 시작되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대규모 간척사업을 통해 성장 발판을 마련한 동아는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최원석 회장이 주도한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동아그룹을 세계 반열에 올린 결정적 계기였다. 사막에 지하수를 공급하는 이 프로젝트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라 불렸으며, 최 회장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술진과의 제휴를 통해 수주에 성공했다.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수반이 “한국 기업에 감사하다”며 최 회장의 손을 치켜세웠던 순간은 동아그룹 최고의 전성기였다.
성수대교 붕괴와 함께 무너진 신뢰

승승장구하던 동아그룹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94년 10월 21일이었다. 동아건설이 시공한 성수대교의 중간 부분이 끊어지는 참사가 발생하며 32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되었다.
당시 서울시와 동아건설은 관리 소홀과 부실 시공을 두고 책임을 공방했으나, 대법원은 결국 동아건설의 부실공사를 원인으로 확정 판결했다. 이 사건은 ‘부실 기업’이라는 낙인과 함께 그룹 몰락의 서막이 되었다.
김포 매립지의 꿈, 그리고 해체
최 회장은 1997년 외환 위기(IMF)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김포 매립지 개발을 통해 반전을 꾀했다. 세계적 팝스타 마이클 잭슨까지 초청해 테마파크 조성을 논의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정부의 용도변경 불가 방침에 가로막혔다.
결국 1998년, 최 회장은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경영권과 전 재산을 내놓으며 물러났고, 동아그룹은 공중분해되었다. 훗날 최 회장은 “정부가 나만 물러나면 회사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 굴곡진 개인사

최원석 회장은 기업 경영만큼이나 화려하고도 순탄치 않았던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김혜정, 가왕 펄시스터즈의 배인순, 그리고 27살 차이의 아나운서 장은영까지.
모두 방송인 출신이었던 전 부인들과의 만남과 이별은 늘 대중의 입방아에 올랐다. 특히 장은영 아나운서와의 결혼은 세간의 엄청난 화제였으나 11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최근에는 이들 이전에 미스코리아 출신의 본처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실제로는 ‘네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재계 서열 10위에 빛나던 동아그룹. 세계 건설사에 남을 업적을 세우고도 부실 시공의 오명과 경영 위기, 그리고 파란만장한 개인사 속에 남겨진 최원석 회장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 기업사의 가장 극적인 한 페이지로 기록되고 있다. 최원석 회장은 2023년 10월 25일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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