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본 한국군, 선전은 동경으로 바뀌었다

2024년 8월, 강원도 고성군 최전방을 통해 귀순한 전직 북한군 강민국 씨의 증언은 북한 내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는 9년간 북한군으로 복무하며 직접 보고 겪은 군대의 실상과, 그 속에서 한국군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전했다.
북한 당국은 군인들에게 한국군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주기 위해 체계적인 사상 교육을 실시한다. 그중 하나가 한국군 훈련 다큐멘터리 상영이다. 영상에는 국군이 평양 점령을 가정하고 실전 훈련을 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의도는 명확했다. 남조선 괴뢰군은 침략자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강민국 씨에 따르면 북한군 병사들은 다큐를 보며 분노보다 감탄을 먼저 느꼈다. 정돈된 군복, 방탄복, 최신식 소총과 장비, 체계적인 훈련 모습은 북한군의 현실과 너무도 대비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저런 옷을 입고 훈련해 보나라는 말이 병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군 병사들의 모습 자체였다. 북한군에서는 보기 힘든 안경을 쓴 군인, 선글라스를 착용한 병사들이 자연스럽게 훈련에 참여하는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규율과 통제 일변도의 북한군과 달리 개인의 개성이 허용되는 듯한 모습은 오히려 동경의 대상이 됐다.
반면 북한군의 현실은 처참했다. 식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옥수수밥과 시래기국이 주식이었고 배불리 먹는 날은 거의 없었다. 군인들에게 포만감은 사치에 가까웠다. 강민국 씨는 군 생활 내내 늘 허기를 안고 지냈다고 회상했다.
피복 사정 역시 열악했다. 군복은 낡고 해졌지만 새 옷은 거의 지급되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수입이 막히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새 군복 대신 이전 세대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기워 입는 일이 일상이 됐다.
장비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강민국 씨는 군 복무 중 목탄차 운전병으로 일했다. 휘발유와 경유가 워낙 귀해 21세기에도 나무를 태워 발생한 가스로 움직이는 차량을 운용했다. 군대라기보다 생존 집단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훈련 수준 역시 명목뿐이었다. 사격 훈련은 1년에 고작 세 발이 전부였다. 총알이 아까워 실탄 훈련을 거의 하지 못하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병사들은 총을 들고 있지만 실제 전투 능력은 키울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군 생활의 대부분은 훈련이 아니라 강제 노동이었다. 전체 복무 기간의 약 80퍼센트가 건설 현장이나 농촌 지원에 투입됐다.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짓고 농사일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탈북을 막기 위한 공포 교육도 반복됐다. 북한 당국은 한국에 가면 생체 실험을 당한다, 샌드백처럼 맞는다는 내용의 다큐를 상영하며 탈북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강민국 씨 역시 이 교육 때문에 오랫동안 탈북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몰래 들은 라디오와 외부 정보는 의문을 키웠다. 선전 영상 속 한국군의 모습이 공포가 아니라 동경으로 다가온 순간 이미 그의 인식은 바뀌고 있었다.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보여준 영상들은 역설적으로 북한 군인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호기심과 균열을 남겼다. 총보다 강한 것은 정보였고, 그 정보는 북한이 통제하지 못한 방향으로 병사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 가수 태진아가 안성기의 빈소에서 오열한 감동적인 이유
- 탈북민 앞에 김정은 사진 찢기자 탈북민이 보인 ‘충격적’ 반응
- 너무 불쌍하다는 박나래의 반려견 복돌이의 충격적인 현재 상태
- 故 조성민의 아버지가 故 최진실과의 결혼을 반대했던 이유
- 자칫하면 강제 정계은퇴 하게 생긴 오세훈 서울 시장 현재 상황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