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낳던 63빌딩 주인의 몰락과 멈추지 않는 추징금 전쟁

신동아그룹은 한때 재계 순위 22위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창업주 최성문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생선 납품으로 자본을 모아 조선제분을 인수하며 기반을 닦았다. 정부 권유로 인수한 대한생명은 그룹의 자금줄이자 성장을 견인하는 거대한 황금알로 자리매김하며 승승장구했다.
여의도의 상징인 63빌딩은 기도하는 두 손을 형상화한 독특한 외관으로 신동아그룹의 영광을 상징했다. 1999년 당시 총자산 20조 원을 보유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그룹은 최순영 회장의 외화 유출 혐의로 요동쳤다. 최 회장이 구속되자 화려했던 신동아의 명성은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지며 해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위기를 모면하려던 부인 이영자 씨의 로비 시도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옷로비 사건으로 번졌다. 고위층 부인들에게 고가의 의류를 선물했다는 의혹은 헌정 사상 최초의 특검 도입과 청문회 개최를 불렀다. 앙드레김의 본명이 공개되는 해프닝 속에서도 정권의 도덕성은 치명상을 입었고 사회적 공분은 극에 달했다.
결국 핵심 계열사인 대한생명은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어 최 회장은 경영권을 방어할 기회조차 잃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한생명과 신동아제분은 각각 한화그룹과 사조그룹으로 팔려나가며 주인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63빌딩의 소유권마저 넘어가면서 신동아라는 이름은 한국 경제의 주류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지고 말았다.
최순영 회장은 1,5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여전히 고액 체납자 명단 상단에 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가택수색을 벌인 결과 현금 2천만 원과 고가의 미술품 20여 점이 쏟아져 나왔다. 가사 노동자까지 고용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도 주민세조차 내지 않는 행태는 대중의 분노를 자극했다.

최 회장은 자신이 정치적 보복의 타깃이며 회사를 되찾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징수관들은 호화 생활을 지속하면서 납세 의무를 고의로 회피하는 비양심 체납자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천명했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재벌 회장의 초라한 몰락과 추한 뒷모습은 한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경제 위기 직후 터져 나온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로비 행태는 서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신동아그룹의 붕괴는 권력과 기업의 유착 혹은 경영 실책이라는 복합적인 시각 속에서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63빌딩은 여전히 여의도에 우뚝 솟아 있지만 그 영광의 주인공은 세금 체납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이 찍혔다.

최 회장 부부는 모든 재산이 종교 재단 소유라 주장하며 세금을 낼 현금이 없다는 입장을 완강히 고수한다. 이영자 씨는 압수당할 현금을 두고 하나님께 바칠 헌금이라며 조사관들에게 신벌을 받을 것이라 악담을 퍼부었다. 헌법이 규정한 납세의 의무 앞에서는 그 어떤 종교적 신념이나 개인적 변명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재벌의 탄생은 과거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민의 헌신적인 희생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역사적 산물이다. 책임은 방기한 채 권리만을 누리려는 특권 의식은 사회적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뿌리째 흔드는 위험한 행위다. 과거의 화려함에만 매몰되어 현재의 시민 의무를 외면하는 태도는 기업가 정신의 완전한 실종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을 소유했던 이들의 근황은 법과 도덕의 경계선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63빌딩은 이제 한화의 명확한 상징이 되었고 신동아의 흔적은 누렇게 변한 기록물 속에만 박제되어 존재한다. 탐욕과 오만으로 쌓아 올린 권력의 끝은 결국 대중의 차가운 외면과 법의 냉혹한 심판이라는 결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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