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집 살인 뒤 이틀 만에 ‘합법 출국’… 다시 밀입국 후 사업까지

체포 직후 취재진 앞에 선 B씨는 “마음이 아프고 떨린다”고 말했다. 범행 다음 날 왜 곧바로 중국으로 떠났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일이 있었다. 죄송하다”는 답만 남겼다. 19년 동안 신분을 숨기며 살아온 그는 결국 1997년 안양 호프집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확인돼 법정에 서게 됐다.

사건은 1997년 4월 11일 새벽 발생했다. 당시 20대였던 중국 국적 B씨는 안양시 만안구의 한 호프집에서 만취해 소란을 피웠고, 업주 A씨가 퇴장을 요구하자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현장에서는 술병과 유리잔 등에서 그의 지문이 발견됐지만, 그때는 이미 도주한 뒤였다.
범행 직후 B씨는 인천항 출입국관리소를 찾아가 불법체류자임을 밝히며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귀국을 요청했다. 당시 불법체류자가 자진 신고하면 과태료만 내고 출국할 수 있었던 ‘출국명령 제도’가 시행 중이었고, 그는 이를 이용해 살인을 저지른 지 이틀도 안 돼 합법적으로 한국을 떠났다. 제도적 허점이 살인범의 도피까지 허용한 셈이었다.

그러나 B씨는 중국에서 지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2003년 6월 다시 밀입국해 성을 바꿔 신분을 세탁했고, 전기설비 회사를 운영하며 사업가로 활동했다.
2011년에는 장기 불법체류 재외동포에게 외국인 등록을 허용한 정부의 ‘재외동포 고충 민원’ 제도를 이용해 합법 체류 자격까지 얻었다. 이후 결혼하며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그의 범행은 술자리에서 스스로 “한국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드러났다. 주변인은 허풍으로 여겼지만, 미제사건 프로그램에서 안양 사건이 방영되자 경찰에 제보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그의 어머니 통화 기록에서 새 이름을 포착했고, 지문 대조를 통해 1997년 인천항에서 찍힌 지문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B씨는 2016년 7월 수원에서 검거돼 범행을 인정했다.

당시 살인죄 공소시효는 15년이었지만, 해외 도피 기간은 시효가 정지된다. 그 결과 B씨 사건의 공소시효는 2018년까지 연장됐고, 2015년 시행된 ‘태완이법’의 소급 적용으로 처벌에 법적 문제는 없었다.
2016년 12월 9일,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B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잔혹한 범행과 장기간 도주를 지적하며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했지만, 우발적 범행으로 보이는 정황과 전과 없음 등을 고려했다. 검찰이 청구한 전자발찌 부착 명령은 재범 위험이 낮다며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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