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로만 알았던 영웅의 불굴의 의지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전사자로 처리되어 위패에 이름이 새겨졌던 한 군인이 43년 만에 북한을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최초의 탈북 국군포로로 기록된 고(故) 조창호 중위의 이야기다. 그의 삶은 현대사의 비극과 불굴의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전사 통보 뒤에 숨겨진 43년의 고난 1950년, 19세의 나이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조창호 중위는 자원입대하여 소위로 임관했다. 하지만 치열한 전투 중 실종되었고, 군 당국은 그를 전사자로 처리했다. 국립현충원 전사자 명비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졌으며 가족들은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수십 년을 보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조 중위는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13년 동안 강제 노역을 견뎌야 했으며, 이후 43년째 광산 마을에 억류되어 고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잊지 않았던 그는 1994년, 70세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77시간의 사투 끝에 맞이한 조국의 품 조 중위는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한 뒤, 77시간의 거친 항해 끝에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1994년 11월, 그는 43년 만에 국군 소위 계급장을 달고 공식적으로 군에 복귀했다. 정부는 그의 공로와 희생을 기려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했으며, 1계급 특진과 함께 중위로 전역하는 예우를 갖췄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현충원을 방문해 전사자 위패에서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지우는 장면이었다. ‘죽은 자’의 명단에서 벗어나 ‘산 자’로서 조국 앞에 선 그의 모습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영원한 안식과 남겨진 과제 이후 조 중위는 북한에 남겨진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다가, 오랜 노역으로 인한 지병이 악화되어 76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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