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400km, 14년… 아들의 코트까지 이어진 한 아버지의 길

경기장 조명이 막 켜지는 순간, 코트 밖 한 구석에서 먼저 숨을 고르는 남자가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유니폼을 입지도 않았고, 응원도구를 들고 있지도 않았지만, 이날도 그는 누구보다 먼저 도착했다. 왕복 400km. 운전만 6시간. 그것도 14년 동안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은 길. 사람들이 “저분은 누굴 보러 오시는 거냐”고 묻는 순간, 그의 시선은 이미 한 사람에게 고정돼 있었다. 195cm 장신 공격수, 프로배구 선수 한성정. 그리고 그의 아버지 한은범 씨. 키는 134cm에 불과하지만 그가 쌓은 응원 기록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1인 전담 직관 시스템’이었다.

한은범 씨의 몸은 어린 시절 사고로 척추가 틀어지며 등이 튀어나왔고, 자라면서 왜소증이 진행됐다. 반 친구들에게 밀리고, 맞고, 놀림받던 어린 날은 그의 등을 세상으로부터 더 굽게 만들었다. 취업도 벽이었다. 그래서 결혼 후 아들을 얻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혹시 내 몸을 닮아 태어나면 어쩌나”였다. 하지만 아들은 건강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잡더니 순식간에 자랐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되던 날, 아들이 조용히 물었다. “아버지, 왜 제 경기 안 와요?” 그는 대답했다. “아버지 몸도 이런데… 창피하지 않냐.” 그 말을 들은 아들은 단번에 말했다. “남들 눈치 왜 봐요? 아버지 오시면 제가 더 잘해요.”
그 말 한 줄이 14년의 시작이었다. 그는 그날 새벽처럼 눈물을 흘리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이후 한은범 씨는 아들 경기를 거의 모두 직관했다. 코로나19가 극심하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밤 11시에 경기가 끝나면, 선수 버스가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짧은 포옹을 하고 다시 200km를 돌아가는 길. 누군가는 “팬심이 저렇게까지 가능한가” 했지만, 그에게는 단순한 팬심이 아니었다. 자기가 겪었던 세상의 결핍을 아들이 느끼지 않게 해주려는 ‘한 사람의 전생애 응원’이었다.

문제는 운동이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회비, 장비, 합숙비, 전지훈련비, 대회 원정비까지. 그는 대출도 받아냈다. 아들이 미안해할까 봐 한은범 씨는 단 한 번도 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돈은 아버지가 어떻게든 할 테니, 넌 운동만 해라.” 한성정은 2017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우리카드에 지명됐고,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없다”고 말했다.
집에는 아들 실물 크기 등신대가 서 있었다. 아버지의 키 134cm, 아들의 키 195cm. 숫자로 보면 두 사람의 거리는 멀어 보이지만, 정작 둘 사이의 간격은 어떤 가족보다 가까웠다. 중학생 시절, 아들이 고기 10인분을 먹고도 “조금만 더 먹고 싶다”고 했던 날. 주머니 사정이 안 돼 외상을 할 수 없어 그냥 집으로 데려왔던 그날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후 아들은 프로 선수가 된 뒤 아버지에게 집과 차를 선물했고, 둘은 여전히 경기장 앞에서 “오늘은 꼭 이기자”라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경기가 끝난 뒤, 한성정은 늘 팬들부터 챙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버스에 오르기 직전, 그는 매번 아버지를 꼭 안아준다. 길게 머무르지 않아도, 그 짧은 포옹 하나면 먼 길을 달려온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아버지가 먼저 떠나지 못하고 아들을 계속 바라보는 순간, 누군가는 말했다. “저건 응원이 아니고, 사랑이다.”
한은범 씨는 말한다. “아들이 잘하기를 바라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아들이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 한 문장이, 이 끝없는 400km를 오늘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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