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화제된 한화 김승연 회장 ‘청계산 보복 폭행’ 사건 전말

2007년 3월 8일 새벽, 서울 청담동의 한 가라오케에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 김동원 씨(당시 미국 예일대 유학 중)가 북창동 클럽 종업원들과 시비가 붙어 집단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세 아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재계에 유명했던 김 회장에게 이 소식은 큰 분노를 안겼습니다. 폭행 과정에서 김 씨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며 눈 주위에 열상을 입는 등 상처를 입었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고소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김 회장은 “철없는 소리하지 마라. 남자답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직접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김 회장은 아들을 폭행한 가해자들에게 사적으로 보복하기로 결심했다. 2007년 3월 8일 저녁, 김 회장 측은 검은색 양복 차림의 건장한 남성들(경호원 및 동원된 인원)을 동원해 청담동 술집으로 들이닥쳐 종업원들을 모았다. 이들은 폭행 가해자들을 파악한 뒤, 불빛이 없는 청계산 인근의 공사장으로 끌고 갔다.
현장에 도착한 김 회장은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라고 물었고, “내 아들이 눈을 다쳤으니 너희들도 눈을 좀 맞아야겠다”며 종업원들의 눈을 집중 가격하는 등 직접 폭행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폭행에 가담하지 않은 종업원이 울며 살려달라고 호소한 뒤에야, 김 회장은 진짜 주범들이 있는 북창동 클럽으로 향했다.

같은 날 밤 10시경, 김 회장은 눈에 붕대를 한 아들 김동원 씨를 대동하고 주범들이 있는 북창동 클럽을 장악했다. 나머지 남성들은 술집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싸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폭행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조 전무’는 김 회장 앞으로 불려 나갔고, 룸 안에서는 고성과 함께 뺨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 회장은 이어 아들 동원 씨를 불러 “네가 맞을 만큼 때려라”고 지시하며 폭행에 가담시켰다.
두 시간이 흐른 밤 12시, 폭행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지만, 종업원 중 한 명이 **”우리 종업원끼리 싸웠는데 누군가 오해하고 신고한 것 같다”며 둘러대며 사건을 무마시켰다.
경찰이 떠난 후 김 회장은 술을 가져오라고 시킨 뒤 폭탄주를 만들어 종업원들과 함께 마셨다. 그리고 “서로 때리고 맞았으니 이제 남자답게 화해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제안한 뒤, 술값이라며 100만 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하며 ‘청계산 사건’은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2007년 7월 공판에서 김 회장은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며 화제가 되었다. 그는 검사의 질문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을 많이 때렸다”고 진술했다. 특히 폭행 당시 상황에 대해 변호사와 상의도 없이 “복싱에서처럼 아구를 여러 번 돌렸다”고 설명하는 등 재판장에서도 특유의 과격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심지어 피곤해져서 경호원들에게 “더 때리라고 했다”고 말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으나,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항소심에 임했다. 결국 2007년 9월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처음부터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동일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재벌 그룹 회장으로서의 과도한 특권 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준엄하게 지적했다.
재벌 총수가 사적인 복수를 위해 건달을 동원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시민들의 반응 중에는 “시원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반 부모는 자식이 폭행을 당해도 합의금만 받고 분을 삭일 수밖에 없는데, 김 회장처럼 “능력이 있는 부모라면 당연히 때린 놈들 사지를 분질러 놓아야 한다”거나 “멋진 아버지”라는 옹호적인 반응이 형성되기도 했다.

반면, 일부에서는”총수의 독단적인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재벌 기업들에서 언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며 재벌 총수들이 스스로를 법을 초월한 특권층으로 생각하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유머 소재로 회자되며, 특히 한화 이글스 야구팀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한화 이글스의 청계산 미팅” 같은 농담의 배경이 되는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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