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 도착한 탈북 축구선수가 국정원을 보자마자 한 행동

최근 탈북 후 한국에 정착한 전직 북한 축구선수 강세계가 자신의 첫 한국 경험을 공개하면서 숨겨진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던 순간, 그는 안내 인력 중에서 국정원 요원을 확인하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고 한다. 북한에서 ‘감시기관=처벌기관’으로 주입된 공포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한국행 배경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혹시나 북한식 문책이 재현될까 두려움이 앞섰다고 고백했다. 국정원 직원이 말을 걸기만 해도 긴장으로 자세가 굳어졌고, 실수하면 곧바로 처벌될 것이라는 북한식 사고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몇 분 후 그는 한국의 절차가 전혀 다른 체계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질문은 확인을 위한 행정 절차였고, 누구도 그의 답변에 위협을 섞지 않았다.

한국 생활의 충격은 그때부터 더 커졌다. 축구 용어조차 모두 영어 기반이라 패스가 무엇인지 몰라 경기장에서 멈칫했고, 드라이기를 ‘건발기’라 부르던 북한식 표현은 곧장 통하지 않았다. 그는 “리모컨도 문화충격이었다”고 말하며, 북한에서 배운 단어들이 한국에서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세계 전체를 바꿔야 하는 과정이었다.
축구 선수로 살았던 북한 시절도 완전히 대비됐다. 월급 대신 쌀 25kg과 기름 한 통이 보상 전부였고, 경기에서 지면 생활총화에서 사상 비판이 이어졌다. 선수 선발은 실력보다 뇌물의 영향이 컸으며, 어릴 적 가난했던 그는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도 벤치에 앉아야 하는 일이 반복됐다. 감독과 선배의 체벌은 훈련 과정의 일부처럼 다뤄졌고, 동료가 실수하면 집단적인 호통이 쏟아지는 문화가 당연시됐다. 특히 주말인 토요일마다 진행한 호상비판이 있는데, 한 선수를 앉혀 놓고 동료들이 앞으로 나와 돌아가면서 이 선수의 잘못을 고발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는 지금도 한국 축구 시스템을 보며 “모든 게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월급을 받으며 운동한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고, 선수들에게 밥과 숙소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북한에서는 혜택이라 여겨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경력의 방향이 자유롭게 열려 있고, 축구 외에도 선택지가 무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차이를 마주한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좁은 세계에서 뛰고 있었는지 처음 실감했다고 한다.
강세계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굳게 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말한다. “국정원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는데, 몇 분 뒤에야 제가 자유국가에 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북한식 감시 체계가 만든 공포는 그렇게 한국의 공항에서 처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며 더 많은 탈북민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삶에 적응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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