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이 생명보다 무거웠던 시대의 아이러니

일본 에도 시대, 고구마 등 맛있는 음식이 풍성했던 가을은 여성들에게도 즐거운 계절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고위층 여성들에게는 엄격한 사회적 잣대와 충돌하는 ‘사활 문제’를 야기했다.
사람 앞에서 실수로 방귀를 뀌는 것은 치욕감에 자살을 하거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될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귀한 여성들의 치부를 덮어줄 전문 직업인 ‘헤오이비쿠니’가 탄생했다.
고도의 연기력과 청력이 필수였던 ‘대리 죄인’
헤오이비쿠니는 평소 높은 신분의 여성들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다가, 여주인이 실수를 저지르면 “제가 했습니다”라고 재빨리 나서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단순히 대신 자백하는 것을 넘어, 주변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헤오이비쿠니가 방귀를 뀌었구나’라고 믿도록 만드는 고도의 연기력이 필수였다. 연기에 실패하여 주인의 수치를 가려주지 못하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시종들과는 달리 별도의 채용 과정을 거쳤다. 결혼할 일이 없어 명예에 대한 부담이 적은 출가한 중년의 비구니가 적임자로 선호되었다. 특히 방귀 소리를 놓치지 않아야 하므로 귀가 멀지 않은 뛰어난 청력 또한 중요한 조건이었다고 한다. 또한 주인의 사소한 실수를 ‘아웅의 호흡’으로 모두 대신 짊어져야 했으므로, 헤오이비쿠니의 역할은 당시 매우 신중하게 여겨졌다.
서민들은 ‘방귀 합전’을 즐기다
이처럼 상류층 여성에게 사활을 건 문제였던 ‘방귀’는, 서민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서민 여성들은 방귀를 뀌는 것을 일상적인 자연 현상으로 여겼으며, 남들 앞에서 방귀를 뀌어도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방귀를 소재로 한 해학적인 문화까지 발달했는데, 에도 시대의 그림 두루마리인 ‘방귀 합전’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엉덩이를 드러낸 채 방귀를 뀌어 상대를 날려버리거나, 방귀를 무기처럼 사용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등 유머러스하고 역동적인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서민 문화에서는 방귀가 웃음과 해학의 소재였으며, 결코 수치심으로 인해 숨기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결국, 여성의 신분이 높고 낮음에 따라 방귀를 대하는 태도는 극명하게 갈렸다. 헤오이비쿠니라는 직업은 사회의 비합리적인 요구와 체면 문화가 낳은 산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에 곤란을 겪던 비구니들에게는 생계 수단이 되었던 ‘상호 부조’의 일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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