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살아 숨 쉬는 고구려의 혼, 고마 신사

일본 땅 한가운데에 고구려 왕들을 기리는 신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다. 사이타마현에 자리한 ‘고마 신사’는 일본식 신사이지만, 그 뿌리는 한반도의 고구려로 이어진다.
고마 신사에서 말하는 ‘고마’는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를 뜻한다. 주몽이 세운 고구려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신사 입구에는 일본 신사에서는 보기 드문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이 세워져 있다. 처음부터 이곳이 고구려와 깊게 연결된 장소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 신사의 역사는 고구려 멸망 직후인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보장왕의 아들 고약광은 유민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들이 정착한 지역이 오늘날 사이타마현 일대의 ‘고마군’이다.
고약광과 유민들은 일본 사회에 편입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들이 세운 사당이 시간이 흐르며 고마 신사로 자리 잡았고, 고구려 왕실을 기리는 제례는 중단 없이 이어졌다. 일본 땅에서 고구려의 제사가 1,300년 넘게 계속된 셈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신사가 대대로 고약광의 후손들에 의해 관리돼 왔다는 사실이다. 고마 신사의 궁사는 고구려 왕족의 혈통을 잇는 가문이 맡아왔고, 오랫동안 같은 공동체 안에서 혼인을 이어가며 정체성을 지켜왔다.

이들은 일본인이면서도 스스로를 고구려 유민의 후손으로 인식해 왔다. 이름과 생활 방식은 일본화됐지만, 신사와 제례만큼은 고구려의 기억을 중심에 두고 유지해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마 신사는 일본 정치권에서도 묘한 의미를 가진 장소로 알려져 있다. 현지에는 이곳을 참배하면 총리가 된다는 미신이 전해진다. 실제로 고마 신사를 다녀간 뒤 총리에 오른 인물이 여섯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출세 신사로도 이름을 얻었다.

이 때문에 일본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조용히 들러 참배하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고구려 왕을 모신 신사가 일본 권력의 상징 공간으로 소비되는 장면은 묘한 아이러니를 만든다.
고마 신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일본 속에 남아 있는 고구려 유민의 역사이자, 패망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한 민족의 기억이다. 국경은 사라졌지만, 고구려의 혼은 여전히 일본 땅에서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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