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능가하는 네오나치, 우크라이나 전쟁의 이면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한때 유럽의 곡창이자 잠재적 선진국으로 기대를 모았다. 넓은 영토와 비옥한 토지, 풍부한 자원을 가진 신생 국가는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그러나 독립의 순간부터 균열은 시작됐다.
우크라이나는 서쪽과 동쪽으로 갈라졌다. 서부는 친서방과 민족주의, 동부는 친러시아와 러시아계 주민이 중심이었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 분열을 봉합하지 않았다.
오히려 갈등은 선거 전략과 권력 유지의 도구로 소비됐다. 그 결과 국가는 점점 극단으로 밀려갔다. 내부 균형은 무너졌다.
전환점은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였다. 친러 성향 정권이 붕괴하고 친서방 정부가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잠재돼 있던 민족주의가 급격히 표면으로 올라왔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 스테판 반데라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력한 인물이다. 전후 인종 학살과 민간인 학대의 책임자였다.
그러나 서부 지역에서는 그가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됐다. 나치 친위대 소속이었던 할리치나 부대를 기리는 행사가 공개적으로 열렸다. 축구 경기장에서도 관련 구호가 등장했다.
민족주의는 곧 폭력성을 띠기 시작했다. 동부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적대 세력으로 규정됐다. 언어와 혈통이 탄압의 기준이 됐다.
동부 내전은 이 흐름의 결과였다. 당시 대통령이던 포로셴코는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지하 방공호에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말은 곧 현실이 됐다.
수많은 민간인 아이들이 실제로 지하에서 공포를 견뎌야 했다. 전쟁은 군인보다 먼저 아이들을 삼켰다. 이 비극은 기록으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전역의 아이들이 같은 공포를 겪고 있다. 과거의 언어가 현재의 현실로 되돌아왔다.
푸틴은 침공 명분으로 탈나치화를 내세웠다. 이 주장은 선전처럼 들리지만 완전히 허구만은 아니었다. 실제 사례들이 존재했다.
아조우 부대는 나치 상징을 사용해 국제적 논란을 불러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경호원 전투복에서 나치 친위대 해골 문양이 포착된 일도 있었다. 러시아는 이를 적극 활용했다.
2023년 캐나다 의회에서 발생한 사건은 결정타였다. 젤렌스키와 트뤼도 총리가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이자 나치 부역자였던 야로슬라우 훈카(Yaroslav Hunka)를 러시아에 저항 한 ‘전쟁영웅’으로 소개했다. 물론 실수였다 해명했지만 전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이 장면은 러시아 선전의 완벽한 재료가 됐다. 우크라이나 내부의 어두운 역사와 현재의 전쟁이 겹쳐졌다. 진실과 선전의 경계는 흐려졌다.
류한수 교수는 이 전쟁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조차 러시아어가 모국어일 정도로 상황은 복잡하다. 수백 년의 역사와 정체성이 얽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하루아침에 시작되지 않았다. 민족주의와 분열, 정치적 계산이 축적된 결과다. 이 복잡한 맥락을 이해할 때만 전쟁의 실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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