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유가족 사죄’가 드러낸 북한의 딜레마
평양 노동당 본부 청사. 지난 8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사자 유가족들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구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비통”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공개 사죄는 극히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전쟁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오열했고, 김정은은 손수건을 건네며 위로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평양의 무거운 공기를 거두기엔 역부족이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밀착을 과시하며 전쟁터로 병력을 보냈다. 공식 확인만 1만 명이 넘는 북한 군인들이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됐고, 그중 상당수가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8월 22일, 북한은 마침내 전사자 101명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다. 유가족 앞에 놓인 영정 사진은 북한이 더 이상 파병 사실을 숨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열흘 뒤 열린 두 번째 행사에서는 더 많은 영정이 늘어섰다.
그간 북한의 선전은 희생을 ‘영웅적’이라 칭송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김정은은 영웅담 대신 “속죄”라는 단어를 꺼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말은 곧 국가의 메시지다. 그가 선택한 단어는 내부 불만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었다.
문제는 희생만큼이나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에서 월 2천 달러에 달하는 급여가 약속됐다는 관측이 있으나, 실제로 유가족에게 돌아간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귀환한 병사들은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사회로 돌아와야 했고, 전사자의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김정은이 유가족 자녀에게 혁명학원 입학을 약속하고, 평양 대성구역에 ‘세별거리’를 지어줄 것이라 밝혔지만, 실질적 생계 대책이 되긴 어렵다는 회의론이 크다.
러시아 전장에서 돌아온 북한 병사들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초콜릿과 단백질바, 러시아군의 전투식량, 후방 병원에서 접한 텔레비전과 인터넷은 폐쇄된 북한 사회와 다른 현실을 각인시켰다.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 파병은 북한 사회의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외부 세계를 직접 목격한 병사들이 언젠가 체제 균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파병을 멈추지 않는다. 지뢰 제거와 건설 인력을 포함한 추가 파병 계획까지 언급된다. 더 많은 병사와 더 많은 희생이 예고된 셈이다. 김정은의 유가족 사죄는 진심 어린 후회라기보다, 거세지는 민심을 달래려는 전술적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기술과 경제적 지원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그 대가는 수천 명의 청년들이다. 영웅담을 반복하는 선전의 뒤편에서,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평생 상처를 안은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정은의 사죄가 진정한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이 전쟁은 북한 사회 내부의 시한폭탄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 ‘매출 3000억’ 전 CEO 싱글맘이 총각과 새출발 하고 싶다고 한 이유
- 북한 군인이 받는 충격적인 월급 현황
- 명백한 타살인데…경찰은 왜 ‘개구리 소년’이 자연사 했다 주장하나?
- 민주당 압도적 지지층 얻었지만…이들 때문에 곧 대위기 온다
- 故 정주영 회장과 비밀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진 미녀 배우의 정체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