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유일 편의점… H 점장이 떠올린 ‘개성공단의 기억’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된 지 9년이 지났지만, 북한 땅 유일의 편의점으로 운영됐던 CU 3개 점포는 여전히 불이 꺼진 채 멈춰 있다. 2008년부터 약 8년 동안 그곳을 책임졌던 H 점장의 회고는 시간이 흘러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H 점장의 공단 생활은 ‘고립’에 가까웠다. 한 달에 두 번만 남측으로 나올 수 있었고, 스마트폰 사용도 금지됐다. 가족과 연락하는 유일한 수단은 사전 승인된 유선전화였으며, 국제전화에 준하는 비용이 한 달 80만 원 가까이 나왔다. 그는 “남쪽에 잠시 나올 때면 마치 휴가 나온 군인처럼 느껴지곤 했다”고 말했다.
그와 남측 직원 2명을 제외한 9명은 모두 북한 근로자였다.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함께 일하며 남북의 차이를 매일 경험했다. 남한의 ‘부킹 문화’를 설명했을 때 20대 북측 여직원들이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던 장면은 또렷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직원들은 6개월에서 1년 근무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내일부터 다른 사람이 나온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당시 개성공단 CU는 약 700종의 상품을 취급했고, 결제는 오직 달러로만 가능했다. 인터넷 연결이 차단돼 상품 코드를 일일이 입력해야 했지만, 북측 근로자들에게는 인기 있는 일자리였다. 코카콜라·초코파이·신라면이 늘 손꼽히는 인기 품목이었고, 얼음이 귀하던 환경에서는 아이스 커피가 하루 100잔 넘게 팔릴 정도였다. H 점장은 “작은 플라스틱 컵 하나도 그들에겐 신기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공단이 재가동과 중단을 반복하다 결국 멈추자, 그는 “정치적 변화가 얼마나 손쉽게 현장을 흔드는지 절감했다”고 말했다. 함께 지냈던 북측 동료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시간이 갈수록 기억 속에서 흐려지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놓지 않았었다. 그가 언론사와 인터뷰 했을 당시 개성공단 3개 점포는 폐점이 아닌 ‘휴업’ 상태로 관리되고 있으며, 마지막 점장이었던 그는 여전히 그 열쇠를 보관하고 있었다.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북한 유일의 편의점 담당자다. 언젠가 다시 문을 열 날을 믿고 있다”는 바람을 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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