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두 번 망하고… 전집 딸린 방에 사는 ‘고교얄개’ 이승현의 현재

한때 70년대 하이틴 영화 ‘고교얄개’로 거리를 걷기만 해도 인파가 몰리던 배우 이승현은 지금 세종시 조치원읍 조치원시장 초입 전집 앞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하루를 연다. 세월이 흘러 팬들의 환호 대신 “전단 한 장만 받아 주세요”라고 고개를 숙이는 일이 더 익숙해진 요즘, 그의 어깨에는 카페 폐업의 상처와 생계 부담이 동시에 걸려 있다.
이승현 부부가 지키는 가게는 전집 ‘새마을전집’ 옆 작은 테이크아웃 카페. 전집 창고를 개조한 탓에 손님은 전집 홀을 가로질러 들어와야 하고, 간판도, 동선도 어설프다. 아침 내내 손님 두 팀이 전부인 날도 허다하다. 그래도 이승현은 유자차를 얼음 동동 띄운 레모네이드로 바꿔주고, 취향에 맞춰 레몬·유자를 따로 챙겨줄 만큼 성의를 쏟는다. 동네 장사라 손님이 왕이라지만, 왕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게 문제다.

더 뼈아픈 건 아내의 건강이다. 전집과 카페를 함께 돌리며 버틴 1년 사이 급성 당뇨에 어깨 염증까지 찾아왔다. 약 봉지는 늘어가는데, 매출은 줄어들었다. 알고 보니 지금 카페는 두 번째 도전이었다. 강변 저수지 앞에서 성업 중이던 대형 카페를 인수해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고 덤볐다가 1년 만에 적자만 잔뜩 안고 나온 것. 전집에서 번 돈과 아파트 입주금, 대출까지 카페에 쏟아부은 끝에, 아파트 입주는 막히고 집은 비워줘야 했다.
결국 부부가 선택한 피난처는 가게에 딸린 작은 방 한 칸. 손님들이 쓰는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가게 문 닫으면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펴는 생활이 이어진다. 남자라 아무 데서나 씻으면 된다고 말하는 이승현과 달리,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아내를 떠올리면 미안함이 더 크게 목을 조인다. 아내는 한때 “여기서 더는 못 살겠다, 각자 갈 길 가자”고까지 말했지만, 끝내 떠나지 않았다.

사실 이승현의 내리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이틴 스타 이미지에 발목 잡혀 성인 연기자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채 캐나다 유학을 떠났다가, 어머니 사업 실패로 빈털터리가 되어 노숙도 경험했다. 만두 가게, 방석·공중전화 영업, 각종 동업 제안까지 돈 된다는 일은 다 해봤지만, 사업 감각은 번번이 빗나갔다. “동업하자, 투자금 대주겠다”는 말에 속아본 횟수만큼 상처도 쌓였다. 그래서 이번 카페 실패는 더 치명적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장사 머리가 안 달린 사람”이라 부르며 아내에게 진 빚만 되새긴다.
그럼에도 이승현 곁에는 가족이 남았다. 국립현충원에서 장모의 묘 앞에 서면, 친어머니를 일찍 떠나보내고 혼자 버티던 시간들이 스친다. 집안 반대 속에서도 유일하게 사위를 두 팔 벌려 안아준 사람이 장모였고, 그 인연으로 그는 ‘외로운 외동’에서 비로소 처가 식구라는 가족을 얻었다. 농사짓는 처형 집에 들러 고추를 따며 “시골 내려와 같이 살자”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버텨온 세월 끝에 겨우 잡은 작은 행복이다.

카페는 이미 한 번 문을 닫았고, 전집 안 테이크아웃 코너만 마지막 불씨처럼 남았다. 컨설턴트가 찾아와 가게 동선을 지적하고,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라 조언하자 그는 복숭아를 갈아 새 음료를 개발해 동네 사람들에게 직접 시음을 권한다.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승현은 말한다. “뭐라도 해서, 저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고 싶어요.” 전성기 명성은 사라져도, 망가진 어깨를 주물러 주는 아내 곁에서 다시 한 번 올라가 보겠다는 마음만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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