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최고가 땅 아래서 나온 61구의 유골

서울 한복판 최고가 부지 아래에서 예상치 못한 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자산 이동의 결과로만 보였던 이태원 땅이, 전혀 다른 기억을 품고 있었음이 공사 첫날 밝혀졌다. 이야기는 삼성가의 조용한 매각에서 시작된다.
5년 전, 이재용 회장은 자신의 신혼집이 있던 이태원 부지를 동생에게 넘겼다. 매수자는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었다. 당시 해당 부지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고가의 땅이었다.
이서현 이사장은 해당 부지에 새 거처를 짓기 위한 공사를 준비했다. 중장비가 처음으로 땅을 파헤친 날, 현장은 곧 멈춰 섰다. 땅속에서 유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발견된 유골은 한두 구가 아니었다. 조사 결과 무려 61구에 달했다. 공사는 즉각 중단됐고, 현장은 통제됐다.

추가 조사를 통해 땅의 과거가 드러났다. 이 부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난한 이들이 묻히던 공동묘지였다. 서울 변두리였던 당시, 가장 낮은 계층이 잠들던 자리였다.
일제는 도시 정비를 명분으로 공동묘지를 강제로 이장했다. 수백 구의 유골이 옮겨졌지만, 일부는 그대로 남겨졌다. 그 유골들이 100년 넘게 땅속에 묻혀 있었다.
현실적인 선택지도 있었다. 법적 절차에 따라 최소한의 조치만 하고 공사를 재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서현 이사장의 판단은 달랐다.
그는 “이곳에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데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유골을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봤다. 땅의 가치보다 죽은 이들의 존엄을 먼저 고려했다.

결정은 단호했다. 발견된 모든 유골을 정식 절차에 따라 수습했다.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예를 갖춰 이장하기로 했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었다. 공사는 지연됐다. 하지만 선택은 바뀌지 않았다. 현장은 더 이상 개발 대상지가 아니었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 아래에는 가장 가난했던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다. 개발의 논리로 덮이기 쉬운 과거였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멈춰 섰다.
유골은 말이 없다. 대신 선택이 말을 한다. 이태원 부지에서의 결정은 부동산 뉴스가 아닌 기억의 방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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